‘이건희 컬렉션’ 신드롬… 전국서 200만명 관람객 다녀가
첫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 최대 병상 150개 ‘민간병원 최대’
소아암·희귀질환 지원도… 10년간 1만7000여명 의료 혜택
[천지일보=김정필 기자] 오늘(25일)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별세한 지 3년이 됐다. 고인이 남긴 미술품 등 이른바 ‘KH(이건희) 유산’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별세 이후 유족들은 ▲문화·예술품 기증 ▲감염병 극복 지원 ▲소아암 희귀질환 환아 지원 등 3대 기증사업 활동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유족은 작년 4월 고인이 평생 모은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000여점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하고, 감염병 극복 지원(7000억원)과 소아암·희귀질환 지원(3000억원) 등 의료 공헌에 1조원을 기부했다.
유산의 약 60%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로, 12조원 이상의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상속 재산의 상당 부분을 매각할 것이라는 예상을 깬 사회 환원이었다. 유족들이 대규모 환원에 나선 것은 국가경제 기여, 인간 존중, 기부문화 확산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역설한 이 선대회장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다.
이 선대회장은 평소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함은 물론 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는 이상으로 봉사와 헌신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시대적 의무”라고 강조하며 삼성의 각종 사회공헌 사업을 주도했다.
◆ 문화·예술품 기증… 韓 미술계 위상 강화에 기여
미술계에서는 가치를 환산할 수 없는 방대한 작품들을 국가에 기증한 유족들의 결정이 ‘국민 문화 향유권을 크게 높였다’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216호)’, 이중섭의 ‘황소’ 등이 포함된 ‘이건희 컬렉션’은 감정가로 2조∼3조원에 이르며, 시가로는 10조원이 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대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은 지난 2021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소중한 문화유산을 국민들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는 고인의 뜻이 실현돼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2021년 5월 ‘박수근 미술관’을 시작으로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해 전국의 주요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열린 기증품 특별전시는 ‘이건희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현재까지 200만명 가까운 관람객들이 기증품을 감상했다. 대구, 광주, 부산, 울산 등 지방 소재 미술관에도 관람객이 몰리고 있다.
지난 2월에서 5월까지 울산에서 열린 특별전시에는 약 16만명의 관람객이 몰렸다. 이 덕분에 울산 도심 방문객이 평소보다 500% 가까이 증가해 지역 상권도 활성화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유족들은 고인의 ‘문화 공헌’ 철학을 계승해 사회환원을 이어가고 있다.
유족들은 지난 8월 광화문 월대 복원을 위해 용인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던 서수상(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을 정부에 기증했다. 이를 통해 광화문 월대를 더욱 온전하게 복원할 수 있게 됐다는 후문이다.
월대 복원을 마무리한 문화재청은 지난달 15일 기념행사를 열어 서수상을 포함한 광화문 월대를 공개했다.
삼성은 최근 한국 미술을 전 세계에 더욱 잘 알릴 수 있도록 세계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과 한국실 전담 큐레이터 운영을 위해 200만 달러를 후원하기로 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한국실을 이 선대회장의 후원을 받아 지난 1998년 만들어졌으며, 한국실 오픈 25주년을 맞아 한국 미술 위상 제고를 위해 삼성이 추가 지원에 나선 것이다. 첫 큐레이터로는 엘레노어 현(현수아) 큐레이터를 임명했다.
이 선대회장 컬렉션과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품을 일정 기간 맞교환해 전시하는 방안이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류 전시가 성사될 경우 국민들은 미국을 방문하지 않고도 세계 3대 박물관의 전시품을 감상할 기회를 갖게 된다.
향후 인왕제색도를 포함한 이 선대회장 컬렉션 250여점은 오는 2025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스미스소니언은 미술관 2개 층을 이용해 외부 소장품 기회적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를 열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술계 관계자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이건희 컬렉션’의 해외 전시는 우리나라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했다.
◆ ‘인간 존중’ 철학 이어받은 ‘의료 공헌’
고인의 ‘인간 존중’ 철학에 기반한 의료 공헌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 2021년 5월 유족 측은 보건복지부, 질병관리청, 국립중앙의료원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 중앙의료원에서 ‘대한민국 감염병 극복 지원 사업’ 기부 기념식을 하고 감염병 극복을 위해 7000억원을 기부했다. 이 가운데 5000억원은 한국 최초의 감염병 전문병원인 ‘중앙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사용된다. 첨단 설비를 갖춘 120∼150개 병상 규모로 국내 민간병원 중 최대 규모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설계 공모를 거쳤으며, 오는 2026년부터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다. 첨단 설비를 갖춘 세계적 수준의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은 서울 중구 방산동 일대 약 4만 2975㎡(약 1만 3000평) 부지에 지어지며, 2028년께 완공될 예정이다.
정부도 투명하고 효율적인 기부금 운용을 위해 유족들의 중앙감염병병원 건립 기부금을 관리하는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또 2000억원은 질병관리청 산하 국립감염병연구소의 최첨단 연구소 건축 및 필요 설비 구축, 감염병 백신 및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제반 연구 지원 등 감염병 대응을 위한 인프라 확충에 사용된다.
정기현 전 국립중앙의료원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일류기업이 국가 중앙감염병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것은 고마운 일”이라며 “기부자의 뜻에 따라 세계 최고 수준의 감염병 대응 국가 역량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 ‘어린이 사랑’… 소아암·희귀질환 지원으로 이어져
유족이 가정 형편 어려운 소아암과 희귀질환 환아를 위해 3000억원을 기부함에 따라 향후 10년간 이들에게 유전자 검사·치료, 항암 치료, 희귀질환 신약 치료 등을 위한 비용을 지원하게 된다. 소아암 환아 1만 2000여명, 희귀질환 환아 5000여명 등 1만 7000여명이 도움을 받게 될 전망이다.
소아암과 희귀질환 임상 연구, 치료제 연구를 위한 인프라 구축 등에도 900억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유족들의 기부금으로 지난 2021년 8월 발족한 ‘소아함·희귀질환 지원사업단’은 올해 6월부터 전국의 소아청소년 백혈병 환자를 대상으로 유전체 검사를 무상 지원하는 정밀의료를 시작했다.
삼성가(家)의 지원으로 환자의 골수나 혈액 등을 분석해 세포 속 수많은 유전자를 한꺼번에 분석하는 첨단 유전체 검사(차세대 염기 서열 분석 검사)가 가능해져 환아 치료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소아암·희귀질환 지원사업단은 작년 9월부터는 전국의 9개 주요 병원과 함께 ‘급성 림프모구 백혈병’을 앓고 있는 전국의 소아 환자들을 위해 검사비를 지원했다.
현재 ‘이건희 소아암·희귀질환 극복사업’의 지원을 받은 ▲소아 희귀질환 코호트 연구 ▲희귀질환 치료 기술 개발 ▲웨어러블 장치를 이용한 환자 관리방안 개발 등 총 73개 연구과제가 진행되고 있다.
김한석 소아암·희귀질환지원사업단장(서울대어린이병원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유족의 기부금으로 지방 소아암·희귀질환 환자가 서울에 오지 않아도 치료를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라며 “지방에 있는 환자들도 서울에 있는 환자들과 같은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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