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야속한 운명을 공유한다고 생각한 아킬레우스와 프리아모스왕은 한참 동안 함께 울었다. 아킬레우스가 노인의 손을 잡고 일으킨다. 그는 헥토르의 시신을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힌 후 늙은 아버지에게 넘겼다. 슬픔에 빠진 프리아모스는 헥토르의 시신을 안고 웅장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트로이 요새의 궁전으로 돌아갔다. 모든 트로이인들이 헥토르의 죽음을 애도했다. 9일 밤낮으로 장작을 모으고 10일째가 되는 날 헥토르의 장례를 치르면서 장대한 서사시도 끝난다. 일리아드에서는 헥토르의 장례식을 자세히 묘사했다.

늙은 프리아모스가 트로이인들에게 명했다.

“장작을 마을 끝으로 가져와라. 아르기베스의 매복은 두려워하지 마라. 나를 진지에서 내보내면서 아킬레우스는 열둘째 날 새벽까지 우리를 공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약속했다.”

백성들은 노새와 소에 수레를 매고 성문 앞에 모였다. 9일 동안 많은 장작을 가져왔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비추는 새벽이 열흘째 다가왔을 때, 그들은 마음이 넓은 헥토르의 시신을 들고나와 눈물을 흘리며 장작더미 위에 높이 올려놓고 횃불을 던졌다. 어린이와 같은 새벽이 장미꽃으로 하늘을 물들일 때, 사람들이 헥토르 왕자의 시신을 태우는 불 주변에 모였다. 모두 모여서 아직 연기가 나는 장작에 황갈색 포도주를 부어 불을 끈다. 친구와 형제들이 슬픔에 잠겨 숯불에서 그의 하얀 뼈를 추린다.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황금 항아리에 그의 뼈를 넣고 연한 자주색 베일로 싸서 무덤에 깊이 놓은 후 커다란 돌을 그 위에 쌓았다. 남자들은 재빨리 무덤에서 일어나 기습공격에 대비해 각자의 초소로 돌아갔다. 프리아모스왕의 방에서 말을 길들이는 헥토르의 장례식이 마무리됐다.

이렇게 일리아드의 전설은 마무리된다. 트로이의 함락, 파괴와 약탈에 대한 이야기는 일리아드 이후 약 20년만에 나온 호머의 다른 위대한 서사시 오디세이에 등장한다. 전쟁에 참가했던 이타카왕 오디세우스가 귀국하는 과정을 펼치는 이 서사시에는 트로이의 파괴를 자세히 설명한다. 목마로 트로이 함락 계획을 세운 오디세우스는 아카이아 전사들 가운데 책략이 가장 뛰어났다. 그리스인들은 목마를 트로이 성 앞에 두고 배를 끌고 떠나는 척했지만 사실은 테네도스 섬 뒤에 숨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트로이인들은 그리스인들이 남겨둔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가야 할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열띤 논의를 거쳐 그들은 이 목마가 아테나 여신에게 바친 제물이라고 판단한 후 트로이 성안으로 끌고 갔다. 전쟁이 끝났다고 생각한 트로이인들은 밤새 술을 마시고 10년만에 찾아온 평화로운 잠에 빠져들었다. 오디세우스와 그의 전우들이 목마에서 나와 테네도스섬에서 돌아온 아카이아군에게 트로이 성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긴 세월 동안 저항하던 위대한 도시 트로이는 초토화되고 말았다.

일리아드에서 호머가 이야기한 사건이 일어난 지역은 고대 정착지와 폐허로 남은 트로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트로아스 지역 북쪽 에드레미트만에서 마르마라해의 남쪽 해안까지 넓은 지역이 무대였다. 그러나 특히 트로이 전쟁이 벌어졌던 트로이 성과 가까운 쪽이 더 중요하다. 이곳에는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영웅들의 옛 무덤이 산재돼 있다.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부터 트로이아(일리온)와 그 주변의 고대 유적을 찾아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트로이에서 불과 몇 ㎞ 떨어진 해안 근처에는 아킬레우스, 아이아스, 파트로클로스의 무덤이 있다. 해안을 따라 시게이온, 로이테이온, 오피리네이온, 아크히레이온 등 일리아드에 나오는 고대 도시도 있다. 이 지역은 아주 먼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트로이 일대는 튀르키예 공화국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호머의 자연’이라 해도 좋을 요새에서 바라보이는 자연환경은 보호돼야 할 역사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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