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전통적 인식에 따르면, 이곳이 트로이/ 일리우스로 알려졌으므로, 일리온을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이곳에서 발견된 동전 덕분에 이 언덕이 새로운 일리온임이 밝혀졌다. 일리온과 트로이가 하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히사를리크 언덕에서 발굴이 시작돼 트로이임이 증명됐다. 호머의 일리아드 이야기는 긴 전설 가운데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그의 이야기는 트로이를 전복시키려는 아카이아인들의 공격에서 마지막 부분에 불과하다. 일리아드는 ‘일리온의 전설’이라는 뜻이다. 1만 5693개의 구절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서 일리우스가 106번, 트로이가 49번 언급된다.

트로이가 포위된 지 10년째인 해, 아카이아의 영웅 아킬레우스와 사령관 아가멤논의 진영에서 전염병이 돌았다. 전염병의 원인은 아가멤논이 아폴론신을 모시는 사제 크리세스(Chrises)의 딸 크리세이스(Chriseis)를 그녀의 아버지에게 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분노한 아폴론이 아카이아군에 전염병을 퍼뜨린 것이다.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의 포로 브리세이스(Bryseis)를 자신에게 넘겨주면 크리세이스를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전장에서 물러났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바다의 여신 테티스는 자신의 아들이 전투에 참가하지 않는 한, 아카이아인이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게 해달라고 제우스에게 간청했다. 제우스는 아내 헤라가 그리스군을 지지한다는 것을 알고도 테티스의 간청을 들어줬다. 전설은 그렇게 시작됐다.

아킬레우스가 다투다가 칼을 휘두르며 아가멤논을 공격했다. 여신 아테나가 급히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손을 붙잡고 말렸다. 말다툼이 계속됐다. 아가멤논이 두 명의 시종을 아킬레우스의 막사로 보내 브리세이스를 데려가려고 했다. 아킬레우스는 어쩔 수 없이 브리세이스를 넘겨주었다. 테티스가 올림푸스에 그 소식을 전했다. 크리세이스는 배에 태워 그녀의 아버지에게 보냈다. 신들이 올림푸스로 돌아왔을 때, 테티스가 다시 간청했다. 제우스는 아내와 심하게 다퉜다. 브리세이스를 빼앗긴 아킬레우스는 분노와 슬픔으로 전장에서 물러나 후퇴했다. 신의 뜻에 따라 전쟁은 처음에는 트로이가 유리했고, 나중에는 아카이아가 유리했다. 어느 시점에서 양쪽은 끝이 없어 보이는 전쟁을 포기하고,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왕 메넬라오스와 남의 아내를 유혹해 트로이로 데려온 왕자 파리스의 대결을 추진한다. 승자가 헬레네를 차지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아프로디테가 파리스를 데려가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신들의 의견이 달라서 합의에 이르지 못하자, 불필요한 전쟁이 계속되면서 양쪽 모두 큰 피해를 입는다. 영웅들끼리의 끔찍한 전쟁이 길게 이어진다. 그리스 본토에서 오는 지원군의 명단과 트로이 편에서 싸우는 동맹국의 명단도 보여준다. 이 목록에는 수많은 아나톨리아 부족도 포함됐다. 트로이 전쟁이 큰 고통과 슬픔 속에서 계속되는 동안 양쪽은 시신을 화장해 매장하기 위해 전투를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루의 휴전 이후, 이다산에 있던 신들이 개입하면서 전투가 재개됐다. 그러나 상황은 아카이아인들에게 불리했다. 지휘관들은 분노로 상처를 받은 아킬레우스에게 시종을 보내 전쟁터로 돌아오라고 애원한다. 아가멤논이 브리세이스를 돌려주었지만, 아킬레우스는 여전히 참전을 거부한다. 트로이군은 도시 외부로 본영을 옮겼다. 아카이아인들은 트로이군을 막기 위해 성벽을 쌓았다.

그러나 아카이아인의 성벽은 트로이 최고의 용사 헥토르에게 무너졌다. 아카이아인들은 어쩔 수 없이 배로 돌아갔다. 여신 헤라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아카이아편을 들지만, 제우스는 태티스와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마침내 트로이군이 아카이아인의 배까지 다가와 일부에 불을 질렀다. 아킬레우스의 분신 파트로클로스는 이러한 상황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아킬레우스의 갑옷과 무기를 빌려서 출전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