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애초에 기대한 것 이상으로 여러 가지 의미와 가능성을 보여줬다. 웹툰 원작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유리한 점도 있지만, 한계도 보일 수 있어 웹툰 팬들 가운데는 드라마를 아예 보지 않은 이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은 이들이 후회할 만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무빙’은 어떤 성과와 의미 그리고 앞으로 과제가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각본에 원작자인 강풀이 참여했던 점이 주효했다. 대개 다른 사례의 경우, 각본을 원작자와 달리 캐스팅을 해서 팬들을 실망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 점과 달랐다. 물론 연출자의 의도와 구체적인 실현이 중요하지만, 최대한 원작자의 각본은 미래지향적일 수 있다. 원작의 골간을 살리면서도 더 풍부한 묘사와 에피소드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창작자에게 원작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거나 보강하고 싶었던 내용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앞으로 다른 웹툰 기반 영상콘텐츠 제작에서도 본보기가 될 수 있다.

대규모 제작비는 원작이 갖는 매력과 가능성 그리고 잠재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했다. 시각적 효과에 제작비가 매몰되는 점을 제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러 사례를 볼 때 만화적 상상력은 실사 영화나 드라마에 실현되지 못했다. 실사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웹툰의 매체상 차이가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 잘 파악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하지만 ‘무빙’은 어떤 작품보다 만화적 상상력의 성과를 매우 근접하게 실현해 보였다. 감정이입이나 장면의 분할과 강조 면에서 웹툰의 효과를 잘 살려 줬다.

매우 한국적 소재가 세계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보여줬다. 우선 사회 역사적인 소재를 대중적인 장르물과 결합해 낸 것은 주제 의식과 대중성의 결합으로 인식의 전환과 사회 변화의 계기를 위해 바람직해 보였다. ‘무빙’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초능력을 가진 캐릭터들의 스토리와 잘 버무려냈다. 리얼리티와 초현실주의를 절묘하게 결합한 스토리라인이 몰입도를 끌어올렸다. 사회적 주제의식 면에서는 안기부 국정원으로 이어지는 정보기관의 변천 속에서도 권력을 위해서 개인들을 어떻게 수단화할 수 있는지 잘 다뤄줬다.

가족주의 코드는 더욱더 차별화를 이룰 수 있었다. 초능력이 유전된다는 설정 때문에 가족주의는 강화될 수 있었다. 하지만 단순히 부성애나 모성애의 부각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바로 자신의 능력이 권력기관에 수단화되기 때문이므로 개인은 물론 가족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노력은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했다.

히어로 캐릭터와 스토리는 할리우드와 매우 다른 면모를 갖췄다. 초능력자들은 슈퍼맨처럼 전지전능하지 않고 한두 가지 우월한 역량을 갖고 있었다. 그 능력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지지 않았고 과정과 노력이 필요했다. 더구나 그들은 제도권에서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루저형 영웅이었다. 이 때문에 공감의 폭은 넓어질 수 있었다. 남과 다른 능력 때문에 외면받고 차별받는 상황은 공교육의 현실은 물론 우리 사회의 획일적인 문화적 가치관을 생각할 수 있었다. 장애는 결핍이나 부족함이 아니라 넘쳐도 장애였다. 각자 부족하고 넘치는 부분들을 잘 교정하거나 상호 보완하는 것이 공교육의 역할이라는 점을 상기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연대의 가치를 대중적으로 다시금 확인시켜줄 수 있었다. 주요 캐릭터들은 각자 가진 역량을 모아서 공동의 과제에 대응하려면 뭉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 함께 공동 대응하는 태도와 자세가 우리 시대에 왜 필요한지 인식시켜 줬다. 우월한 능력이 있는 존재들도 그러한데 그렇지 않은 개인들은 더욱더 말할 점이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다. 초능력자 캐릭터의 류승룡, 조인성, 한효주, 김성균, 차태현 등은 물론 빌런 캐릭터의 문성근, 류승범 등의 연기가 ‘무빙’의 재미와 주제 의식을 더욱 배가시켰다. 비록 이런 배우들에 인지도는 낮더라도 고등학생 자녀 캐릭터들은 더욱더 히어로 캐릭터를 재발견하게 했다. 그들의 성장을 통한 협업이 앞으로도 기대되는 이유였다.

다만 ‘무빙’은 디즈니에게는 좋은 성과를 가져다줬지만, 다른 K-콘텐츠에 비해 전 세계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주로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은 초능력 히어로물이라는 제한된 장르적 속성에다가 루저형 영웅물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독보적 가치일 수 있다. 앞으로 아시아적 가치 차원에서 이 성과를 확장시킬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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