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을 생각한다면, 그 콘텐츠를 접하는 사람들의 희망과 꿈을 고려해야 한다. 세상의 본질을 일깨워주려는 생각은 부차적이다. 더구나 비극적 결말로 이를 실현하려 한다면, 예술상을 받으려는 행위로 비친다. 일반 관객과 시청자는 예술상 심사위원이 아님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요즘 시청자들은 자신과 동일시하며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주인공 캐릭터를 선호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스크걸은 패착으로 흘렀다. 김모미는 상대적으로 우월자였는데, 이를 간과해 오히려 비호감을 유발했다. 바디 조건이 매우 우월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댄스와 무대 퍼포먼스에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목을 받았던 이유다. 친구들이 가질 수 없는 유연함에 몸매는 물론 목소리 톤이나 컬러도 그 정도면 수준급이다. 이런 정도가 됐기 때문에 마스크를 쓰고 폭발적인 인기리에 인터넷 BJ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 연출은 이한별 배우를 억지로 추녀 프레임에 가두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점철했다. 이한별의 얼굴을 댓글 등을 통해 오크, 극혐과 같은 단어나 문장으로 폄하했다. 보통 시청자의 얼굴은 이한별의 얼굴이거나 그보다 더 못하다. 이러한 점은 주오남 역할의 안재홍도 마찬가지다. 평균 이상의 외모와 조건을 분명히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찌질이 못난이로 규정해 놓았으니 평범한 시청자가 보고 싶어 할 일이 없다. 더구나 현실에서 안재홍 정도라면 충분히 관심을 보일 수 있다. 더구나 이 드라마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내리기 위해 상황을 부정적이다 못해 파국적으로 치달아 가게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정말 치명적 설정이었다. 순수하고 진실했던 주오남이 김모미에게 마음을 다하며 위기에서 구해주는 장면의 클리쉐가 갖는 대중적 소망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김모미를 위하는 주오남이 우발적인 살인자가 되는 것도 모자라 밑도 끝도 없이 선한 그가 김모미를 범하려다가 오히려 살해를 당한다. 시청자들은 설마 주오남이 정말 목숨을 잃었을까, 그렇게 되지 말기를 바란다. 이런 희망은 철저히 간과되고 김모미는 성형으로 자신의 얼굴을 바꾼 채 잠적을 해버린다. 이로써 마스크걸은 유효하지 않게 됐다.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 즉, 염혜란이 본격적으로 범인을 찾아 나서면서 또 한 명의 성형걸이 등장하는 장면은 더욱더 이 드라마의 제목은 마스크걸이 적절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증하게 했다. 더군다나 두 성형걸이 자신의 상처와 고통을 보듬으며 의지하는 장면은 공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상태와 조건은 보통의 시청자라면 공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이입과 동일시를 할 수 없는 이 성형걸들의 공통된 특징은 자신의 장점은 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최고의 미남 바람둥이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남성은 모두 적대적인 대상이 된다. 물론 주오남과 같은 남성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성형걸 자체가 혐오의 대상으로 비난을 퍼부으면서 여성 비하의 의도를 가지면 곤란할 것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결손은 그들 두 여성의 내적 고민과 방황의 심리가 심정적 공감을 일으키지 못한 상황에서 내러티브의 나열에 그쳤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오남의 엄마 김경자의 극단적인 행동은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보여준 광기의 모성을 훨씬 뛰어넘는다. 아들 살해범을 잡기 위해 총을 구입해 사살하려 하거나 감옥의 범인을 추적하고 그 딸에게까지 복수하는 행태는 집착을 넘어 정신 질환이었다. 즉 주오남의 엄마에게도 시청자는 공감은 물론 동의를 할 수가 없다. 결국 없는 결핍의 존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세상의 진실일까. 시청자들은 이런 내용을 보기 위해 일상의 시간을 일부러 할애할까?

전 세계 65개국의 5만 6968명의 참여로 이뤄진 영국의 앵글리아 러스킨 대학(ARU)의 연구는 신체 이미지를 주제로 한 연구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연구였는데, 자신의 신체에 대한 긍정 인식은 전반적으로 심리적 편안함과 삶의 만족으로 이어진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긍정의 바디 이미지에서 긍정의 가치관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긍정적 바디 이미지(positive body image)는 빼어난 몸매가 아니라 자신의 몸을 인정, 가치 부여,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자신의 몸에 긍정인 사람들이 심리적인 행복감이 더 뚜렷했다. 삶의 만족도도 이러한 몸에 관한 긍정 태도와 거의 일치했다.

마스크걸을 통해서 우리가 바란 것은 김모미와 주오남이 연결되고, 아들의 애인이 마스크걸이라 반대하던 주오남의 어머니 김경자와 그들이 나누는 화해일 것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건 현실에서 흘러넘친다. 성형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다 바꿔줄 수 없다는 것도 물론이다. 본래 몸에 대한 긍정이 없으면 성형 몸에 대한 만족도 결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개미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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