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트리클 다운(trickle down)과 스필오버(spillover)는 비슷한 개념으로 혼동되는 때도 있다. 낙수효과라 불리는 트리클 다운 효과는 적하 효과라고도 한다. 원래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 1904년 유행의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개념에서 시작했다. 위로부터 밑으로 유행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대 상류층의 유행 현상이 그 이하의 계층에 유행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것이 경제 정책의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됐다. 양동이에 물을 부으면 그 물이 밑으로 흐르듯이 상류층이나 대기업의 부가 늘어나면 하류층이나 중소기업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논리를 담았다. 

스필오버는 특정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주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다. 논에 물을 대면 그 옆 논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현상이다. 트리클 다운 효과가 수직적인 개념이라면 스필오버는 수평적으로 파급 영향 효과를 가리키는 셈이다. K팝과 관련해 백워드 스필오버라는 개념이 주목받고 있는데, 이를 봐도 수평적 파급효과 개념이 잘 드러나고 있다. 옆으로 팬덤의 외연이 확장해가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본래 ‘백워드 스필오버’는 특정 가수의 앨범이나 노래가 크게 히트를 할 때 과거에 발매한 곡들을 찾아서 듣는 현상을 말한다. 문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있는데 감명 깊은 작품 때문에 그 작가의 과거 작품도 찾아보게 된다. 영화의 경우에는 감독이나 배우의 작품을 찾는 것과 같다. K팝에서는 새로운 팬들이 과거의 앨범이나 음원을 찾아서 듣거나 구매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예컨대 데뷔 9년 차 걸그룹 트와이스가 북미에서 크게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과거에 발매한 곡들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데뷔 7년 차인 세븐틴의 경우에는 구보와 신보가 모두 잘 팔리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일종의 디깅(digging) 컬처의 현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는 채굴 소비 현상이라고 하는데 ‘파다’를 뜻하는 ‘Dig’에서 파생한 개념으로 개인이 선호하는 품목이나 영역, 대상에 깊게 파고드는 행위를 말한다. 이러한 디깅 소비는 역주행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새로 선보인 노래도 아닌데 갑자기 차트 순위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신보가 아닌 구보가 갑자기 판매된다면 이는 새로운 팬들이 더 많이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기존 팬들이 갑자기 구보를 장만하려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K팝의 백워드(backward) 스필오버가 바람직한 것은 직접 팬들이 앨범과 음원을 구매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지속해서 미래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의미를 지닌다. ‘백워드 스필오버’는 백워드루킹(Backward-looking) 즉 과거 지향적인 개념하고는 다르다. 백워드루킹은 ‘과거 일만 생각하는’ ‘시대에 뒤진’ ‘퇴영적’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과거의 추억에 안주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백워드는 본래 조정 경기에서 노를 뒤로 젓는 것을 말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뒤로 노를 저어야 한다. 얼마나 힘차게 뒤로 젓는가에 따라 앞으로 나아가는 정도도 달라진다. 1보 전진을 위한 2보 후퇴다. 결코 퇴보나 후퇴로 볼 수 없다. 

백워드 스필오버는 포워드루킹(forward-looking) 행동으로 봐야 한다. 포워드루킹은 미래를 예측하며 그에 따라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잘 이해하고 팬덤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 K팝 백워드 스필오버의 정체성이자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스필백(spill back) 현상은 리버스 스필오버(Reverse Spilover)로 불리는데, 스필오버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때 사용된다. 만약 백워드 스필오버가 과거지향에 머물러 있다면 스필백 현상을 일으키고도 남음이 있다.

디깅 컬처에 따라서 백워드 스필오버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새로운 세대들이 문화적 채굴을 즐겨 하기 때문이다.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는 과거 콘텐츠라도 그것을 새롭게 의미부여 하는 작업에 적극적이다. 그들은 어떠한 정보와 콘텐츠도 찾아내 이를 공론장에 다시 소환시킬 수 있는 역량과 수단을 갖고 있다.  특히 이전 세대와 다른 점은 이렇게 채굴한 문화자원을 혼자만 즐기지 않고 다른 이들과 공유 확산하면서 보람과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들은 개인적이지만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이러한 점을 어떻게 상생의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이제 초기의 활동이라고 해도 K콘텐츠는 더욱더 꼼꼼하고, 세심하며 완성도 높은 수준으로 만들어야 한다. 거꾸로 실력이 있고 내용이 좋다면 언젠가는 인정받고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형성되고 있다. 백워드 스필오버를 말미암아 이제 본 궤도에서 K스타일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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