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1973년 박정희 정부는 국위 선양 동기를 부여하는 차원에서 병역특례제도를 도입했다. 당시에는 한국의 입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이 중요한 면도 있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이제 국위 선양이 아니라 국제적인 망신의 표상이 됐다. 불공정성은 물론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그야말로 천태만상이었다. 어느 때보다 병역특례제도의 허점을 드러내 준 사례도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병역 면제가 걸렸기에 이기려 했는데, 일본은 경험을 쌓기 위해 이기려 했다. 이건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다.” 1960~1970년대 브라질과 일본에서 활동했던 일본계 브라질인 세르지우 에치고가 닛칸 스포츠에 기고한 글 일부다. 여러 지적이 있었듯이 한국 선수팀은 프로 선수들이 대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경기에서 우승했다. 일본 국가대표팀 총 22명 가운데 10명은 대학리그에서 활동 중인 선수였다. 22세 선수들이 주축인 데다가 프로 선수들은 벤치를 지켰다. 한국팀은 그야말로 대학생 팀을 이기고 20명이 병역특례를 받았다.

이번에 우승한 야구팀은 더욱 심각했다. 금메달로 19명이 이제 병역특례를 받는데 참가국은 8개국 정도밖에 안 됐고, 대부분 아마추어 야구팀이었다. 더구나 한 번도 경기에 참여하지 않은 선수까지 특례대상이 됐다. 애초에 구단별로 3명씩 묶어 대표팀에 포함 시킨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골프도 프로 선수들이 아마추어 선수들과 경기를 벌여 단체전 금메달을 손쉽게 얻고 병역특례의 수단이 됐다. 여자 선수들은 시즌 중이라 아예 불참했다. 참가 의도가 너무 분명했다. 더 나아가 아마추어 선수들의 기회까지 박탈했던 셈이다.

e스포츠도 논란의 대상이 됐다. 금메달 2개를 받은 리그 오브 레전드(LoL) 종목에서 6명이 모두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한 선수는 “시대를 잘 타고 태어나서 감사하다”라는 말까지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이런 종목이 과연 스포츠인가 싶은 의구심은 바둑, 브레이킹 댄스에 카드 게임(브리지), 체스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기의 본질뿐만 아니라 금메달의 값어치도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이다. 1974년엔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16개에 불과했는데 이번에 42개나 획득했다. 병역 의무는 신성하다는데 그 신성한 의무가 변칙적인 특례 때문에 훼손되고 있다. 앞의 사례나 상황을 종합적으로 볼 때 올림픽은 물론이고 아시안게임이 합법적인 병역 브로커였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는다.

앞서 e스포츠 선수가 언급한 “시대를 잘 타고났다”라는 말은 모순이다. 시대가 아니라 의사결정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드러내 주는 영역은 스포츠가 아니다. K-콘텐츠의 시대라고 할 때 K-팝, 드라마, 영화 등이 더욱 한국의 국위를 선양하고 있다. 스포츠경기보다 훨씬 불확실하고 어려운 결과다. 이 때문에 아시안게임보다 이들의 활약이 더욱 높이 평가를 받고 있다. 잘못된 의사결정 때문에 불공정한 피해를 보고 있는 셈이다. 대중문화예술은 상업적이지 않으냐 할 수 있지만, 프로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대거 참가해 병역특례 받는 현실은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무엇보다 병역 의무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국위 선양이라는 점을 볼 때 방탄소년단(BTS)만 한 이들이 없다. 아시안게임이 유발하는 경제 효과보다 더 우월한 결과를 만들어왔다. 오히려 그 가치는 산정할 수 없을 정도이다. 방탄소년단만이 아니라 수많은 K-팝 아이돌 그룹들이 국위 선양은 물론이고 경제적 효과를 이 순간에도 낳고 있다.

물론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은 깎아내릴 수 없다. 그렇지만 단 한 번의 대회 성적으로 병역특례를 주는 것은 적절한지 의문이다. 아시안게임으로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는지 모를 일이다. 한류와 경제 입지가 스포츠보다 더 한국의 위상을 확립하고 있다. 국외가 아닌 국내를 봐도 더는 아시안게임은 국민이나 세계인들의 관심 사항이 아니다. 사실 텔레비전 본방에 집중하지도 않는데, 전파만 낭비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바라볼 때 스포츠경기의 입상을 병역특례로 삼는 사례는 없어져야 한다. 아시안 게임의 병역특례 혁파는 시작에 불과하다. 이후 차츰 불공정한 병역특례 대상을 폐지하고 새로운 형태의 병역 대체 제도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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