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우연일까. 영화 장르도 아닌 드라마 시리즈에서 초능력자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콘텐츠 자체의 차별성이라는 요인이 작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사회적 배경과 이유도 있어 보인다. 왜 초능력자들의 영상콘텐츠가 많이 등장하며,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무빙’ ‘경이로운 소문 2’ ‘힙하게’ ‘소용없어 거짓말’은 모두 요즘 가장 핫하다는 드라마들이다. 이 드라마들의 공통점은 모두 초능력을 갖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들 드라마는 ‘무빙’ ‘경이로운 소문 2’의 계열과 ‘힙하게’ ‘소용 없어 거짓말’ 계열로 나뉜다. ‘무빙’ ‘경이로운 소문 2’ 계열은 상호 보완적 히어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유형이라고 전제할 때 ‘무빙’ ‘경이로운 소문 2’는 공통적인 점이 몇 가지가 있다. 우선 개별 초능력자들은 한두 가지 초능력을 갖고 있다. 즉 슈퍼맨처럼 모든 초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서로 상호 보완하면 집단적 대응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서는 것이 효과적이다. 더구나 이들은 인간적인 약점과 한계 그리고 각자 삶의 상처와 고통이 있다. 이를 딛고 좀 더 나은 능력을 키워나간다. 그런데 그 능력은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 공동체를 위한다. ‘무빙’은 국가 첩보전에 활용되고 ‘경이로운 소문 2’에서는 악귀를 물리치는 데 쓰인다. ‘무빙’은 특히 국가기관의 선한 역할에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요컨대 개인의 아픔과 고통의 산물인 초능력이 자신의 복수만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를 위해 이바지한다.

‘힙하게’ ‘소용없어 거짓말’ 계열은 개별적 일상 초능력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힙하게’에서 주인공은 운석 낙하의 자기장으로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갖추고 사물과 대상의 기억과 흔적을 읽어낸다. ‘소용없어 거짓말’에서는 거짓말을 기막히게 감별해 내는 라이너 헌터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키고 있다. 거짓말을 사냥한다는 것인데 이런 능력들이 있다면 일상에서 참 좋을 듯싶은 설정임이 분명하다. 이 유형에서도 개별적인 하나의 초능력이 부각한다. 이들은 다만 상호 보완적 히어로 유형과 다른 즉, 집단적으로 초능력을 협업하지 않고 개인 일상의 문제들을 해결하거나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이런 두 유형의 작품들은 다른 점들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런 초능력 주인공 드라마의 공통점은 ‘세미 리얼리즘’이라는 사실이다. 초현실의 판타지가 아니라 나름 치열하고 적절한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로써 초능력 캐릭터 콘텐츠가 가질 탈현실성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럼 왜 이런 초능력자가 등장하고 있을까? 아마도 현실의 무기력이 심할수록 초능력을 통해 현실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이 반영된 현상일지 싶다. 콘텐츠 자체에서는 그동안 리얼리즘 콘텐츠의 한계와 피로증 때문일 수도 있다. 그동안 ‘더 글로리’나 ‘오징어 게임’은 세계적인 흥행까지 낳았지만, 현실을 너무 리얼하게 다뤘고, 현실의 문제점을 잘 인식하게 했지만, 부정적인 우울감이 더 심화하게 했다.

이에 더해 사적 복수가 갖는 방법은 그 한계에 이르게 됐다. 비현실적인 방법이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통쾌한 해법을 추구한다면 비현실적이라도 초능력을 등장시켜도 무방했다. 사실주의를 넘어 뭔가 통쾌한 현실 변화를 갈구하는 대중 열망이 어느 때보다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법치와 제도, 정책을 강조하지만, 일반 국민 관점에서 달라지는 것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생각조차 못 했던 악행은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현실이 있다.

다만 캐릭터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 등장시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나름대로 인간적인 한계도 있고 초능력도 제한적일 때, 더욱 공감과 동일시 감정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주인공은 아무리 영웅이나 초능력자라 해도 존경이나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수평적 관점에서 같은 감정 몰입을 일으킬 수 있는 대등한 존재일수록 호응을 받는다. 별종이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들은 또 하나의 부캐라고 할 수 있다. 아픔과 상처를 딛고 능력을 갖추기까지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현대인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대변한다.

초능력자를 등장시키는 캐릭터들은 현실 모순을 통쾌하게 해결하고 싶은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오로지 노력과 실력을 통해서 해결하고 싶은 마음까지 담고 있다. 스스로 그러한 과정과 능력을 배가시켜 모순을 해결하고 싶은 우리의 마음이 담긴 것이기도 하다. 영웅은 완전히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재능이 있는 이들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에 달렸다. 이런 문화의식이 반영돼 있다.

한편 공동으로 가족주의가 매우 강하게 등장하고 있다. 이는 어쩌면 가족 해체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문화적 갈증을 반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자발적 1인 가족에 고독사가 횡행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출생과 고령화 시대에 가족주의 보편성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점에서 개별화와 특수성을 어떻게 갖출 것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할리우드 초능력자가 아니라 한국적 상황을 반영한 이런 작업들이 더욱 다양화돼야 하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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