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순휘 정치학박사/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

지난 8일 송도컨벤시아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글로벌 평화 컨퍼런스’에서 ‘인천상륙작전과 글로벌 인천의 미래’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성대하게 열렸다.

올해는 정전협정과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로서 인천시에서는 인천상륙작전 성공 제73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올해는 유정복 시장의 강력한 의지로 과거 기념식 위주의 요식행위를 벗어나서 인천상륙작전 전승 주간이라는 시민 축제로 14일부터 19일까지 다양한 행사가 개최된다.

그 첫 행사로 국제학술세미나에서 ‘인천상륙작전의 군사적 전략적 전술적인 재조명’은 매우 유의미하다고 할 것이다. 특히 관·학·군·민의 합동성과 미국과 프랑스의 전문가 참여로 기획과 준비 및 시행이 추진돼서 국제학술세미나로 격상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1섹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유정복 인천광역시장은 “인천상륙작전은 노르망디상륙작전보다 더 위대한 전승으로서 오늘날 대한민국의 존재는 인천상륙작전의 승리에 있다.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킨 구국의 전승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2025년에는 인천에서 인천상륙작전 참가 8개국의 국가 정상을 모시고 자랑스러운 인천상륙작전 75주년 기념행사를 추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앤드류 해리슨 중장(유엔군 부사령관)은 축사에서 “노르망디와 마찬가지로 인천 또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인천과 노르망디는 모두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전쟁의 판도를 바꿨다. 두 작전 모두 평화와 안보의 초석이 된 승리를 이끌어 냈다. 두 작전 모두 역사의 새 지평을 열었다. 두 작전 모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기념비적 전투이다”라고 전쟁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한국사회에서는 인천상륙작전 성공의 가치에 대한 연구와 평가가 외면당하는 현실이다.

제2섹션에서는 허남성 박사(국방대 명예교수)의 진행으로 인천상륙작전의 군사전략적 측면에서 첫 발제자 이상호 박사(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의 군사학계에서 몰랐던 작전비사로써 ‘100-A’작전이 최초 공개됐고, 인천시에 ‘인천상륙작전의 아카이브(Archives) 구축’이라는 제안이 있었다. 이광수 중령(육군대학 한국전쟁사 교수)의 발표에서는 1950년 당시 상륙작전의 전투절차와 부대운용이 요도식 에니메이션으로 설명돼 참석자들의 이해를 돕고, 서울탈환과 낙동강 전선의 북한군 주력부대 와해를 가능케한 작전,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 대결의 승리 및 아시아 우선주의 전략의 시초로 인천상륙작전을 전략적 작전적인 분석을 했다.

그리고 한국문화안보연구원 부원장인 본 칼럼니스트는 인천상륙작전의 용병술체계로 설명하면서 영국의 리델하트의 ‘간접접근전략(Indirect Approach Strategy)’으로 재조명해 맥아더 장군의 천재적 군사전략을 재해석했다. 특히 인천상륙작전(Chromite Operation)의 준비단계에서 미 해군 클라크 대위와 함명수 해군 소령(후에 7대 해군참모총장)과 임해윤 중위의 팔미도 등대 점등과 KLO부대 활약상과 영흥도청년의용대원의 첩보활동 및 영흥도 어민들의 지원 등 인천시민의 참전활동상이 중요한 작전기여라는 사실을 발표했다.

동시에 인천상륙작전은 전후 전사적으로 과소평가됐기에 그 당시 구국의 대승을 거둔 맥아더원수를 포함한 7개국 유엔장병들과 한국군 해병1연대와 육군17연대 및 KLO 첩보부대원 등과 인천시민의 헌신과 희생을 기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인천상륙대첩(仁川上陸大捷)’으로 개칭해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해서 참석한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아냈다.

이어서 패널로 참가한 이민웅(대구가톨릭대학교 석좌교수), 김인승 중령(진)(공군사관학교 교수), 서치종(해병대군사연구소 연구위원), 권태환(육사총동창회 북극성안보연구소 소장)은 각 군의 역할을 설명하고 특히 일본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최초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세계전사상 ‘인천상륙대첩’은 북한군을 대혼란에 빠뜨리고 9.28 수도 서울 탈환의 발판을 제공한 대승(大勝)이었으며, 전장의 주도권(the initiative)을 장악하면서 국가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이후 서울 수복과 북진(北進) 반격을 가능케 한 최고 수준의 한·미·유엔군 최초연합작전이었다. 북한군의 허를 찌르면서 보급로를 차단하는 맥아더의 신출귀몰한 작전술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맥아더 장군은 미 합참의 반대를 극복해야 하는 난관에 봉착했으나 간접접근전략의 상륙작전으로 일거에 전장상황을 수세에서 공제로 전환시켜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회복시켰던 것이다. 이런 군사적 전략, 작전술, 전투의 대승리를 군작전 활동의 최하위 개념으로서 ‘인천상륙작전’이라는 통상명칭을 사용하기보다는 위대한 대승을 기리는 ‘인천상륙대첩’으로 개칭하는 것이 노르망디 작전보다 더 위대한 작전으로서 인천시와 인천시민의 명예를 회복하는 의미도 지대하다.

‘인천상륙대첩’이 전사상 남긴 교훈으로서의 정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불가능을 가능으로 역전한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둘째, 사전에 첩보부대활동을 통해 조수간만의 차이, 비어수로(飛魚水路), 북한군 벙커위치, 적 부대의 배치상태 등 철저한 준비를 통한 준비정신이다. 셋째, 유엔국 7개군과 한국군의 8개국으로 구성한 연합군의 상호협조를 작전의 성공으로 이끌어 낸 연합정신이다. 넷째, KLO부대, 영흥도청년의용대원 30여명과 어민들의 첩보지원 및 중학생의 적벙커위치 파악 등 군민통합의 정신이다.

인천광역시는 지난 5월 재외동포청을 유치해 1000만 도시라는 브랜드를 획득했다. 유치전에서 보여준 유정복 시장과 시민들의 단결된 애향정신은 바로 ‘제2의 인천상륙대첩 정신’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항재전장(恒在戰場)의 정신으로 ‘인천의 꿈, 대한민국의 미래’를 선도하는 인천시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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