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성직자 종교 영역까지 침투
배척보단 공존 방안 모색 분위기
“기술 발전, 개혁 계기로 삼아야”

‘영성’ 등 한계에 대한 우려 제기도
“AI 우상화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가톨릭·불교계, 윤리관 구축 제안

 

‘AI시대’ 종교가 가야할 길

챗GPT로 등장한 인공지능(AI)의 진화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고작 9개월 전에 세상에 나온 대화형 AI가 종교계까지 영향을 미치 면서 흥미롭다는 반응과 함께 일부 종교지도자들은 종교적 맥락에서 인공지능의 한계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AI가 인간의 정신적 깊이를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AI 신을 숭배하는 새로운 종교가 등장할 것이라는 예측이 보고되면서 세계적 석학자들도 경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종교계는 AI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본지는 AI시대에 종교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각 종단 AI 전문가 및 관계자들에게 물었다.

ⓒ천지일보 2023.08.31.
ⓒ천지일보 2023.08.31.

[천지일보=이지솔·임혜지 기자] “신이나 기도, 믿음 등의 개념을 이해하는 것은 나로서는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영성을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두고 왜 그런지 수도 없이 궁금하게 여겼는데,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중략). 인공지능(AI)은 인간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숭배할 신도 없고, 제례 의식도 없고, 우주적인 차원도 없고,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고, 천상의 영역도 없고, 세상을 살핀다는 천사도 없다.”

최근 화제가 된 ‘챗GPT 인생의 질문에 답하다’라는 책에서 영성에 대해 챗GPT가 한 말이다. AI 시대, 종교계는 인간이 지닌 육체의 한계성과 취약성을 극복하려는 인공적 시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더 나아가서 AI를 배척해야 할까, 공존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까. 이미 영국이나 일본 등 각국에서는 AI를 장착한 AI 로봇이 목회자가 돼 성당이나 교회에서 설교하고, 스님이 돼 설법하고 있다. 로봇 성직자가 당장 인간을 대신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 배하지만, AI가 종교의 영역까지 침투하면서 종교지도자들은 AI와 경쟁하는 아이러니한 상 황에 놓였다.

대화형 AI 챗봇인 챗GPT에게 AI시대에 종교계가 가야할 길에 대해 물었다. 챗GPT는 “AI 시대에 있어서 종교계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며 “현대 사회의 변화와 발 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도 기존의 가치와 신념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변을 내놨다.

그렇다면 정작 종교계는 어떠한 입장으로 AI를 바라보고 있을까. AI 인식에 대해서는 긍정과 부정 의견이 모두 존재했다. 이 중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4차 산업혁명과 AI의 진화 등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변화를 종교계도 수용하고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할 때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각 종단 AI 전문가들은 종교적 맥락에서 AI의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또 신부나 목사, 스님 등은 자신의 자리를 도전받고 있다며 우려 섞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종교 본연의 모습 밝히는 절호의 기회

“챗GPT 등 AI의 등장은 종교의 위기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종교는 이러한 과학 문명의 발전에 순응하고 앞으로 나아가며 순기능을 통해 올바른 종교 이해를 확산시키고, 종교 본연의 모습을 세상에 환히 밝히고 드러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AI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세상에서 종교계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묻자 원불교 약대교당 정 상덕 주임교무는 이렇게 말했다. 정 교무는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가 개교의 동기에서 밝힌 ‘물질개벽’은 바로 오늘날 과학 문명의 발전을 말하는 것”이라며 “챗GPT 등 AI의 등장은 인류의 발전으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AI는 인간의 편의를 도와주는 효율적 도구”라며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종교계에서도 전도나 포교 등에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예컨대 원불교에서는 챗GPT 등을 활용한 홍보 전략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원불교에 관련한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한 다음에 AI를 통해 보다 손쉽게 학습할 수 있게 도와줘 ‘올바른 원불교’를 알리기 위해서다.

정 교무는 “문명의 발전을 종교의 위기로만 볼 것이 아니라, 이에 적응하고 순응해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과학 기술의 발전을 종교가 새로워지는 길을 찾는 계기로 삼아 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불교 서울교당 소속인 박현수 성균관대학교 인공지능학과 교수는 원불교 신문과의 인터 뷰에서 “AI 기술을 잘 활용하면 작은 교당이나 원불교의 세계교화에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봤다. 교무가 혼자 법회를 보는 교당이 나 외국인 교도가 많은 해외 교당의 경우 훈련 된 AI를 활용하면 다국어가 가능한 사회자 혹은 성가 반주자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는 것 이다.

지나치게 의존하거나 맹신해선 안 돼

AI 활용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윤리문제 등을 이유로 AI 활용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 교수는 AI가 써낸 설교가 나오고 AI가 진행하는 온라인 미사가 생겨 나더라도 ‘치유’와 ‘영성’의 영역은 고유한 인간의 역할이자 수행자의 능력임을 강조하며 지나 치게 의존하거나 맹신해선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소장 박은호 신부도 문명의 발전에 따라 우리가 AI의 혜택을 받는 입장이라면서도 “만약 인간이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인 결정을 내릴 때 또는 자신의 어떤 삶의 방향성에 대해 AI에게 지나치게 의존을 한다거나 해결하려고 하면, 인간 본연의 주체적인 책 임을 소홀히 하게 되고 기계에 종속되는 결과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AI가 모든 것까지 다 결정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며 기술을 사용해야 하고, AI가 어떤 결과를 제시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됐는지 알기 위해서는 투명성이 필요하다”며 ‘AI 윤리를 위한 로마선언’의 투명성을 강조했다.

2020년 교황청 생명학술원이 발표한 ‘AI 윤리를 위한 로마선언’은 ‘알고리즘 윤리’의 관점을 지니기 위한 6가지 원칙으로 ▲AI 시스템은 설명 가능해야 함(투명성) ▲모든 인류의 필요가 고려돼야 함 ▲AI를 고안하고 배치하는 사람들이 책임 있게 일해야 함(책임성) ▲공정성과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해야 함(공평성) ▲AI 시스템 자체 가 믿을 수 있게 작동해야 함(신뢰성)을 제시한 바 있다.

또 박 신부는 “AI가 앞으로 신과 같은 믿음의 대상처럼 여겨질 수 있는 여지도 있다고 본다” 며 “종교인들은 AI가 우상화되지 않도록 조심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점차 고도화되고 있는 AI에 대해 불교학계에서도 논의들이 잇달아 이뤄지고 있다. 동국대 허남결 교수는 ‘인간의 미래, 불교의 미래-인공지능의 발전과 자비윤리의 요청’을 통해 AI시대에 기반한 불교 윤리를 제안했다. 허 교수는 피터 D. 허쇽의 저서 ‘불교와 지능 기술-보다 인간적인 미래를 위하여(2021)’를 소개하고 AI가 제기한 핵심적인 도전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윤리적인 것’에 있음을 강조했다.

김유리 동국대 종학연구소 전임연구원과 조계종 전 불학연구소장 정운스님도 ‘인공지능 시대, 불교 교육 방향성 고찰을 위한 시론적 연구’에서 금강경에 기반한 인공지능 윤리관 구축을 제언했다.

AI 활용, 오히려 ‘독’ 될수도

유일신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체험신앙을 하는 개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만든 기계가 대신 전하고 인간이 그 말씀을 듣고 있는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는 듯싶다. 아직까지 한국 교계에서는 목회자의 역할에 로봇이나 AI 기술이 도입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2020년 ‘4차 혁명시대 교회와 예배’를 주제로 연 정기 월례회에 참석한 평택대 외래교수 전대경 목사는 발제를 통해 “인공지능은 기능적 인면에서 목사의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행할 수도 있지만, 결국 ‘마음’이 없으므로 인격과 영성도 없으며 교회의 본질적 기능인 권징과 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김상구 백석대 교수는 “미래를 지향하는 관점보다 오히려 원초로 가야 한다”며 “답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풍수와 기치료를 하는 스님으로 알려져 있는 대한불교임제종 평인사 주지 혜원스님도 학문 이나 논문을 검색할 때 AI를 활용한다면서도 “잘못된 답변을 할 때도 있어서 해당 분야의 전 문가가 아니면 검증하기 어려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님은 “AI가 객관적인 정보가 아닌 것 같은 답변을 줄 때도 있어 의문스럽고, 인간의 영성을 아직 따라오진 못한다” 고 강조했다.

천주교, 개신교, 불교뿐 아니라 유교 등 민족종교에서도 챗GPT 등 AI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성찰하고 있다. 과학의 발달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가 AI 활용에 신 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았다.

천도교 박남수 전 교령은 “AI는 인간이 만들어 낸 도구에 불과하고 절대 인간이 지닌 능력과 동일하거나 대체할 수 없다”며 “AI와 신앙을 접목하는 등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종교는 ‘가장 으뜸가는 가르침’인데, 종교인들이 AI에 의존하게 되면 인류의 가르침은 사라지는 것”이라며 “AI에 너무 가치를 부여해선 안 된다. 종교계가 나서 이러 한 위험성을 짚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균관유도회총본부 최영갑 회장은 “어려운 경전을 AI를 활용해 쉬운 말로 풀어내거나 하는 등 사람들이 유교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라면서도 “AI가 종교 지도자의 역할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봤다. 그는 “종교는 영적인 부분 이 크게 작용한다”며 “AI가 종교 경전 구절을 해석하는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영성이 없기 때문에 실제 목사나 신부, 스님의 역할 등을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신자들이 지나치게 AI에 의존할 경우 신앙에 ‘독’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 도 했다. 그는 “AI가 주는 판단이나 지식은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며 “(AI에) 부주의하게 몸을 맡기면 사찰이나 교회 등 을 찾는 신자들이 줄어드는 사태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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