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 ‘밀수’는 오랜만에 한국 영화 오리지널 판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영화 ‘범죄도시 3’가 좋은 성적을 냈지만, 연작 시리즈이기 때문이다. 근래 극장가는 연작 시리즈가 창작물보다 훨씬 흥행에 어려울 수 있다. 새로운 소재와 형식의 영화에 대해 배제하는 보수적인 영화 선택 때문이다. 영화 ‘밀수’의 대중적 흥행과 별도로 혹평이 따랐다. 과연 그 혹평이 적절한지는 각자 취향과 선택에 맡겨야 한다. 다만 오해의 소지는 지적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가치를 이야기하면서도 또 다른 인식은 챙겨야 할 것이다. 그것은 류승완 표 액션 영화의 또 다른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과와 앞으로 주어진 미션은 무엇일까?

일단 영화 ‘밀수’가 레트로 취향의 범죄 액션물인 점은 분명하다. 항상 범죄 액션에 등장하는 조폭 코드도 확인할 수 있다. 감독이 대중적인 흥행 코드를 고려한 증거들이다. 더구나 류승완식 액션 장면을 매우 기대한 면이 있다. 이번 ‘밀수’에서는 수중 액션 장면이 탁월했다. 물론 일부에서는 수중 액션 장면에 너무 과도하게 집중했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단골 흥행 코드에만 머물렀다면 영화 ‘밀수’가 갖는 시도의 가치와 대중적 흥행성은 보장받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듯이 ‘여성’이다. 밀수 범죄물에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여성 주인공들이 영화 ‘악녀’ 킬러로 등장하지 않는다. 더구나 해녀라니 발상은 무난하게 관심을 불러일으킬 만했다.

하지만 영화 ‘밀수’를 여성 영화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를 보면 딱히 부정하기 어렵다. 김혜수(춘자), 염정아(진숙) 등 주연이 여성들이고, 해녀들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한 극적 갈등 해소의 매개고리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바다 안에서는 강자이다. 이런 점은 육지 중심의 액션 영화를 시원하게 전복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이점이 류승완 감독이 수중 액션에 공을 들인 이유다. 일부에서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라는 여성 버디 무비와 같은 성격을 지적하기도 한다. 일견 맞는 면도 있지만, 현실에 좌절하고 낭만적 죽음으로 도피한 ‘델마와 루이스’와 달리 영화 ‘밀수’는 해피엔딩으로 통쾌하며 유쾌하다. 상업 영화로서는 당연한 기대치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 흥행과 반대인 국내 극장가의 영화 ‘바비’와 달리 영화 ‘밀수’가 흥행에 성공한 것만 봐도 여성주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어 보였다. 유독 한국은 여성주의에 예민하기 때문이다.

영화 ‘밀수’는 여성주의에 관한 영화가 아니라 보편적인 ‘신뢰’에 관한 영화다. 우리가 어느새 생계와 돈 앞에 흔들리는 우정의 이야기도 아울러 다뤄주고 있다. 다시 후반부에 재회한 김혜수와 염정아가 다방에 앉아서 눈빛을 마주치는 장면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자신을 의심한 염정아에게 속마음을 확인하며 김혜수는 절절하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우리에게 끝까지 어떤 믿음이 남아 있어야 하는지, 그것을 이 시대에 울림으로 주려 한다.

요컨대 과거의 복고 코드를 통해 신뢰와 우정을 담아내는 류승완이 강조하는 것은 그래도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과 가치는 있다는 점이다.

다만 영화 ‘밀수’를 통해 영화 ‘미씽’의 한 장면이 생각났다. 그 원칙과 가치는 누구의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영화 ‘미씽’에서 엄지원(지숙)은 폐렴에 걸린 딸 다은이를 입원시키기 위해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병원에 가서 호소한다. 마침내 남편을 심하게 쪼기에 이른다. 그는 엄마의 역할을 다하는 그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지원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그 최선을 다하는 듯한 행동이 남의 집 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것을 말이다. 그때 난치병으로 아이를 입원시켰던 공효진(한매)은 병원비가 밀려 있었는데 마침 엄지원의 부탁 때문에 애절한 호소에도 쫓겨나야 했다. 아마도 그 남편은 아빠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쫓겨난 거리에서 공효진의 아이는 죽었다.

영화 ‘밀수’에서 주요 인물들의 행동은 과연 그대로 바람직할까? 먹고 살기 위해 가족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던 주인공 그리고 밀수 총책이자 조폭의 우두머리 조인성(권상사)은 해피엔딩을 맞았다. 하지만 그들의 밀수로 다른 누군가는 피해를 봤을 것이다. 선량한 시민 혹은 생산자, 유통자 그리고 소비자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밀수 때문에 누군가의 신뢰와 우정은 물론이고 사랑을 파괴당했을 수도 있다. 우리 시대의 우정과 신뢰 그것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다. 선과 악의 상대성 속에 총체적인 인과 관계 사고가 문화인(文化人)의 시대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밀수’ 시즌 2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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