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계획에 이어 국방부도 서울 용산 청사 앞에 설치된 홍 장군의 흉상 이전 및 재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산당 입당 전력이 있는 홍 장군의 흉상을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 억제를 하고 전시에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에 둬야 하느냐’는 내부 문제 제기가 있어서라는 것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밝힌 이유다.

홍 장군의 소련 공산당 가입 활동 이력은 ‘자유시 사변’ 당시 레닌으로부터 공산당증을 받고 군복 권총을 받은 것을 이른다. 자유시 사변은 소련 적군과 이르츠쿠계열 공산당 독립군이 공산당 입당을 거부한 민족주의 계열 독립군 1500여명을 학살 체포한 사건으로 홍 장군은 이들의 재판 등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장군은 1920년 6월 일제에 맞선 ‘봉오동 전투’ 압승의 주역이다. 이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청산리대첩도 대승으로 이끌었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해 카자흐스탄 지역으로 강제이주 당한 그는 해방 전인 1943년 현지에서 별세했다.

해방 이후 좌익 우익 이념 논쟁이 시작되고 6.25로 북한 정권이 탄생한 점을 고려하면 홍 장군은 북한 공산 정권 탄생을 예측할 수도 없던 시절에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 당시는 사회주의 진영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자연스러웠던 시기다.

앞서 문재인 정권에선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문제 삼아 보훈부가 유공자에서 삭제를 추진하기도 했다. 백 장군이 사단장이던 1사단이 6.25 전쟁 당시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국군은 최후 방어선인 낙동강 전선을 지키며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윤석열 정부는 다부동에 백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친일 전력 지우기에 나서는 등 백 장군의 명예회복에 힘을 쏟았다. 홍 장군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가지만 공산당 전력이 있어 안 되고, 백 장군은 공산당과 싸워 이겼으니 친일 이력이 있어도 용서가 된다는 식의 정부 판단은 상당히 이중적으로 보인다. 과거의 공과(功過)를 판단할 때는 당시의 시대상을 고려해야 한다.

국방부가 홍 장군 흉상 이전을 검토하는 것과 관련해 여당 내부는 물론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종찬 광복회 회장도 ‘반역사적 결정’이라며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정권 성향 따라 독립투사에 대한 평가가 달라진다는 것은 정권의 빈약한 역사 인식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라를 지키는 국방부가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 건 항일투쟁 영웅 홍 장군의 흉상 이전 계획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며 즉각 철회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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