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골프여제’ 박인비는 2013년 7월 미국 대표적 공중파 아침프로그램인 NBC 투데이쇼에 출연했다. 미국에서도 가장 유명인들만 나올 수 있는 방송이다. 심지어 골프선수는 박인비가 첫 출연이었다.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서 진행된 이날 방송에서 박인비는 유창한 영어실력을 과시했다.

그녀는 승부 앞에 어떻게 침착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나도 평범한 사람이다. 다른 선수들처럼 압박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골프 코스에서만큼은 침착해진다”며 비결을 공개했다. 박인비는 당시 제68회 US 여자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 우승으로 박인비는 메이저대회 3연승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미국골프역사에서 이 기록이 나온 것은 1950년 베이브 자하리아스 이후 박인비가 처음이었다. ESPN 등 스포츠 전문방송은 박인비를 ‘여자 타이거 우즈’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인비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여자 골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골프가 112년 만에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다시 채택된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 역사적인 의미가 컸다. 박인비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일궜고,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는 등 프로에서 이룰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이루고도 2020 도쿄 올림픽에 또 한 번 출전했다. 

박인비가 골프를 넘어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4일 제2차 원로회의를 열고 2024 파리 올림픽 기간 중 열리는 새 IOC 선수위원 선출 투표에 출마할 한국 후보자로 박인비를 추천했다고 밝혔다.

기존에 선수위원으로 활동하던 유승민 위원의 임기가 내년에 끝나면서 한국은 새 IOC 선수위원 출마 후보를 낼 수 있다. 당초 지원자는 박인비를 비롯해 김소영(배드민턴), 김연경(배구), 이대훈(태권도), 진종오(사격)까지 총 다섯 명이었다. 모두 한국 스포츠를 대표하는 쟁쟁한 스타들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박인비가 평가위원회 만장일치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건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췄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중학생일 때 미국으로 건너가 네바다 주립대 리노 라스베이거스캠퍼스 호텔 경영학과를 마치고 선수생활도 주로 미국에서 해 영어가 유창하다.

IOC와 선수 사이 가교 역할을 하는 선수위원은 23명이다. 유승민 위원을 포함해 4명의 임기가 내년 8월 만료되는데, 이 자리를 파리 올림픽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투표로 결정한다. 이번 선거에 도전하는 후보군은 총 16명으로 알려져 4 대 1의 경쟁률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각국에서 한 명씩 후보로 내세울 수 있는 가운데 한국은 외국어 능력과 선수 경력 등에서 탁월한 박인비를 선정했다.

유승민 위원은 “박인비 프로가 선수위원으로 갖춘 역량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제가 후보에 뽑혔을 땐 영어학원에 등록하는 게 시작이었는데, 이분은 그럴 필요도 없다”며 그의 빼어난 영어 구사능력이 최대 강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각국 정치나 이념과 거리를 두는 IOC 특성상 선수위원 선거전은 정부나 체육회 같은 외부 도움을 받기 힘들다. 스스로의 힘으로 선거전을 펼쳐야 한다. 박인비는 이 같은 점을 의식해서인지 “유승민 위원이 선거 때 450㎞를 걷고 체중이 6㎏ 빠졌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는 500㎞를 걸어서 10㎏ 감량하는 걸 목표로 해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침묵의 암살자’로 불리며 경기를 할 때 조용한 이미지를 보였던 그였지만 앞으로 열정적인 선거 활동으로 선수위원 투표에서 좋은 결과를 내기를 바란다. 이제 한국 스포츠도 국제 공용어인 영어에 능통한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를 IOC 선수 위원으로 가질 때가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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