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한국 배구가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다. 남녀 모두 역대 최악의 성적을 면치 못한다. 남자는 이미 중국, 일본에 밀려난 지 오래됐다. 여자도 연전연패에서 허우적댄다. 남녀 모두 무너지고 있는 현상이 올해 들어 더욱 두드러진다.

남자배구 대표팀은 지난 15일 끝난 2023 아시아배구연맹 챌린지컵에서 3위에 그쳤다. 준결승에서 바레인에 0-3으로 완패당한 데 이어 3, 4위전에서 베트남에 1세트를 내주고 간신히 3-1로 이겼다. 이미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활약하는 일본(세계 6위), 이란(10위), 중국(25위)이 불참한 이번 아시아 대회에서 한국은 우승은커녕 예전 약체로 여겼던 바레인에게 패했다. 아시아 강국대열에서 탈락하고 2류국 신세가 된 냉엄한 현실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한국 남자배구는 2018년 VNL 1회 대회 이후 VNL 무대를 밟지 못했다. 2018년 대회에서 1승 14패로 최하위에 머물며 세계랭킹이 몇 단계 추락을 거듭했다. 이번 바레인전 패배로 세계랭킹은 29위에서 32위로 떨어졌다. 한국 남자배구가 급격히 추락하는 사이에도 일본과 중국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과시해 대조를 보였다.

일본은 지난 24일 끝난 2023 VNL 3·4위전에서 이탈리아를 3-2로 제압하고 3위에 올랐다. 지난해까지 VNL 남자부에서 4강에 오른 아시아 팀은 없었다. 일본과 이란이 지난해 8강에 진출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달랐다. 일본은 예선전부터 돌풍을 몰아쳤고, 3위에 오르며 새 역사를 썼다.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따라 제압하며 저력을 뽐낸 것이다.

한국 여자배구 몰락도 심각하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 ‘기적의 4강 신화’를 달성한 여자배구는 ‘배구 여제’ 김연경이 태극마크를 반납하면서 추락을 거듭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VNL 12전 전패 승점 0의 수모를 겪었다. 한국 여자 대표팀이 최악의 성적에 그쳤지만, 중국은 2023 VNL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의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여자배구는 중국의 비상을 먼발치에서 부러운 듯 지켜보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한국 남녀 배구의 추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초중고교팀과 대학팀에서 오래전부터 위기 신호가 울렸다. 남녀 중고배구팀은 선수 부족으로 매년 해체 숫자가 늘어났다. 특히 여자 중고팀은 팀 수가 부족해 정상적인 대회 운영이 힘들 정도이다.

하지만 점차 열악해지는 초중고와 대학 배구에 비해 프로배구는 위기감을 느끼지 못하고 자신들의 리그만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남녀 프로배구 모두 실력에 비해 수억대의 고액 연봉을 받는 선수가 많다. 남녀 7~8억원의 연봉을 받는 선수도 있다. 일부에선 남녀배구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다.

모든 스포츠가 그런 것처럼 배구의 국제 경쟁력은 국내로부터 나온다. 국내에서 우수한 선수들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외국팀과의 경쟁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국내에서 우수선수를 양성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다. 그동안 우수선수들을 발굴하지 않아 선수 부족으로 인해 고만고만한 선수들끼리 경쟁하는 폐쇄적인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남녀 모두 라이벌 중국과 일본에게 뒤졌으며, 이제는 동남아나 중동 국가들에게까지 뒤지는 참담한 현실을 맛보게 된 것이다.

한국 배구는 사례 유례없는 현재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 초중고 선수가 대표선수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임시처방식의 대책이 아닌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위기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워 실행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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