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미국 CNN의 ‘한국 출산율 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앤다’는 제목의 기사는 흥미롭다. 우리나라 사교육 과열을 정확하게, 반박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냉철하게 분석했다.

기사에서는 “고급 미적분부터 모호한 문학적 발췌문에 이르는 ‘킬러 문항’은 두통을 유발할 정도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학원(Hagwon)’에 가는 게 흔하다. 부모의 목표는 자녀가 수능을 높은 성적으로 통과하고,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학생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자녀가 수능을 치르기까지 부모와 수험생 모두 ‘고되고 값비싼 여정’을 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킬러문항을 ‘두통을 유발할 정도’라고 우회적으로 비꼬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필자가 중학생 때인 45년 전에도 과외가 존재했다. 지금은 과외, 학원, 온라인 강의까지 그때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 학원이란 닭장에 사는 닭하고 다를 바 없다. 2021년 기준 OECD 국가 중 청소년 자살률 1위가 당연하다. CNN 기사처럼 아이들은 더 고되고 비싼 대가를 치르며 공부에 매달린다. 그동안 교육 정책을 책임져온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기에 교육이 퇴보했는지 의문이다.

수능, 수행평가, 내신, 수시, 논술, 자소서 등 아이들이 숨돌릴 틈도 없이 공부로만 내몰린다. 수시는 고1 성적이 전교 석차 안에 못 들면 2, 3학년 열심히 공부해도 명문대 가기 어렵다. 정시가 마지막 동아줄이니 신뢰가 떨어지는 공교육보다 사교육에 의지하는 게 필수다.

자사고, 특목고 등 명문고에 진학하면 명문대 진학 확률이 높아지니, 부모들은 중학생 때 학원, 과외로 선행학습을 시키기 위해 사교육비를 지출한다. 학원을 안 가면 놀 친구가 없어서 학원을 가기도 한다. 공부 안 해도 일종의 탁아비용이라 생각하며 학원비를 지출하는 부모도 많다.

과거에는 오로지 학력고사 하나만 파고들면 됐다. 고1, 고2 때 조금 놀고 방황하다가도 고3 때 정신 차리고 공부하면 원하는 대학 진학이 가능했다. 학교 교육과정만 열심히 공부해도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들이 고교 시절에는 야간자율학습이 있었다. 굳이 학원을 보내지 않아도,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교사의 지도하에 자율학습을 통해 실력을 키워 명문대에 진학했다. 학생의 인권을 존중한다며 야자를 없앴지만, 결과는 학원 가는 시간만 늘렸다. 야자 시대의 아이들이 오히려 더 행복했다.

국·영·수 주요 과목 교사들의 실력과 열정이 공교육의 경쟁력이라 할 수 있지만, 사교육에 밀린지 오래다. 수업이 제대로 되지 않으니 대충 시간 때우기식 수업만 하다 중간, 기말고사가 다가오면 시험에 나올 만한 중요한 부분만 찍어주는 교사가 태반이다. 학교 방과 후 수업도 그 교사들이 다시 맡으니 학생들의 참여도가 떨어지고 비싸더라도 학원이나 과외로 달려간다. 현실이 이러니 교사 부모들이 가장 사교육을 많이 시킨다. 수백만원짜리 명문대 입시 컨설팅까지 받는 경우도 많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느냐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는 사회부터 개혁해야 한다. 학벌과 상관없이 고졸이어도 좋은 직장에서 많은 보수를 받는 사회부터 만들면 굳이 비싼 학원을 보내, 좋은 대학을 진학시키려 애를 쓰지 않는다. 인서울 대학이라도 졸업 못하면 인생에서 낙오되는 게 현실이니 부모도 선택의 여지가 없다.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킬러문항을 없애도 만점 맞기 위해 학원을 또 갈 수밖에 없다. 그게 대한민국 교육의 현주소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면 자연히 사교육은 줄어든다. 이번 사교육 개혁 시도는 분명히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밑거름이 돼 먼 미래에는 개혁된 교육 제도하에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아이들이 각자의 재능을 살려 행복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게 지금의 수능 개혁을 응원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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