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교사가 되려면 많은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 일단 중·고등학교에서 전교 상위권에 들어야 임용시험 합격률이 높은, 수준 있는 사범대에 진학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독학이든 노량진 고시학원이든 몇 년간 임용시험을 대비해야 겨우 합격한다.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 꿈에 그리던 교사가 된 신규 교사들이 교단을 떠나고 있다. 교육부의 ‘전국 국공립 초중고 퇴직 교원 현황’에 따르면 작년에 5년 차 미만 퇴직 교사가 600여명으로 전년 대비 2배나 된다. 명예퇴직을 신청해 교단을 떠나는 교사는 훨씬 더 많다.

교사가 교직을 떠나는 이유로 수업은 예외였지만 요즘은 수업 자체도 힘들다. 한 반이 25명이면 기껏해야 7~8명이 수업을 듣고 나머지는 딴짓하거나 잠을 잔다. 인권침해라며 휴대폰마저 수거하지 않는 학교는 유튜브까지 본다. 학원은 입학시험을 치니 수준별 수업이 가능하지만, 학교는 1등부터 꼴등까지 한 반에 모여 있으니 수업이 제대로 되는 게 이상할 정도다. 학교가 수업은 포기하고 내신 평가기관으로 전락했다.

필자가 퇴직 전 아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 “왜요?”라는 말이다. 요즘은 “어쩔 건데요?”라는 말이란다. 반별로 1~2명씩 꼭 있는 문제아들과 실랑이하면서 겪는 감정 소모는 진이 빠진다. 잘못된 행동이나 언사를 한 학생에게 무력을 행사하거나 거친 말이라도 하면 바로 아동학대로 고소당한다.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는 무기력한 교사의 처지에 절망해 선택할 길이 없으니 교단을 떠난다.

교단을 떠나게 만드는 원인으로 요즘은 극성스러운 학부모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소아과 의사가 폐업하면서 특정 ‘맘’을 원인으로 지목해 폐업 안내문을 게시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애 관련 직업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교사나 의사를 무시하며 자식 잘되라고 자식만 감싸는 부모들은 그게 자식을 망치는 부메랑이 되는 줄 알지 못한다. 자유가 아닌 방종을 가르쳤다는 걸 깨닫는 순간, 아이는 이미 부모가 통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변해있다.

지난 10년 진보 교육감이 교육을 장악한 후 교권은 망가지고, 학교는 붕괴했다. 공교육은 설 자리를 잃고 사교육에 밀려났다. 학생인권조례를 만든 자들이 지금의 교권 추락, 공교육 붕괴의 원인 제공자다. 아무런 대책 없이 밀어붙인 결과는 향상된 학생 인권 대신 안하무인의 괴물을 만들어 냈다. 교사에게 아무런 제재 수단이 없으니 신규 교사일수록 무기력감에 빠진다.

교문에서 ‘학생 지도’란 말조차 인권침해라고 쓰지 못한다. ‘교문 맞이’라고 해야 한다니 개그도 보통 개그가 아니다. 숙제를 안 해와 교실에 남겨 숙제시켜도 아동학대라고 한다. 애가 잘못을 저질러 훈계해도 ‘정서적 학대’라고 한다.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교권은 설 자리를 잃었다. 교사가 감정노동자의 범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예전처럼 교문에서 학생 복장 상태를 지도하고, 조회 시간에 휴대폰 걷고, 종례 시간에 나눠주는 정도의 지도는 제도로 보장해야 한다. 복도에 나가 의자 들고 무릎 꿇고 앉아 반성하는 시대 정도는 아니어도, 교칙으로 교사가 아이들을 통제할 장치는 필요하다. 학교에서 제대로 통제받지 않은 아이들이 군대에 가니 군대마저 극성스러운 부모의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는다. 군대에서마저 통제받지 않고 사회에 나오니 직장에서 부적응자들이 난무한다.

불과 10여년 전만 하더라도 학생의 진로 희망 1, 2순위에 늘 오르내리던 교사란 직업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추락했는지 암울하다. 아무도 교사가 되고 싶지 않은 나라, 교사가 희망을 잃고 사직서를 제출하는 나라,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길 포기하는 나라는 미래가 없다. 교사의 질적 하락을 막을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와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 질 낮은 교육은 국가의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져 대한민국의 미래마저 위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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