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한국방송공사(KBS) 시청료 분리 징수를 강행하는 정부의 속도가 무섭다. 상상 불허의 속도로 질주하고 있다.

개인이나 집단, 심지어 국가도 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빨리 달려야 할 때 있는 힘을 다해 뛰지 않으면 때를 놓치게 된다. 그래서 전력 질주, 이런 말도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질주해서는 안 될 일임에도 질주해서 역사를 퇴행시키고 공동체는 물론 자기 자신도 파멸시키는 역사적 사례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정부가 지금 하는 행동을 보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것 같다. 군사작전과 다를 바 없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나와 있듯이 독립성을 생명으로 한다.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방송의 자유와 공익성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해야 하는 조직이다. 지금 방통위가 하는 행동을 보면 언론의 자유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험에 빠트리는 길로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방통위는 회의를 열고 한국방송공사(KBS) 시청료 분리 징수안을 보고 안건으로 올리기로 했다. 표결 결과를 보면 우습기 짝이 없다. 2대 1로 결정했다. 다수결 논리에 따르면 옳은 것 같아 보인다. 무엇이 문제인가?

방통위원은 모두 5명이다. 한 명은 하자가 있다고 해서 정부의 힘이 작용해 면직됐다. 한상혁 방통위원장 이야기다. 임기 2개월을 남기고 면직 처분을 받았다. 또 한 사람은 민주당 몫으로 국회에서 의결된 최민희씨다. 윤석열 대통령은 국회가 결정한 지 3개월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고 있다. 정권의 입맛에 안 맞는 방통위원장은 면직 처분하고 당연히 임명해야 할 사람은 임명하지 않은 채 3명만으로 표결을 강행했다.

표결 전에 있어야 할 시행령 변경에 대한 보고 절차도 없었다. 간담회를 열었을 뿐이다. 절차에 하자가 연속으로 발생한 의사결정은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민주적 정당성이 훼손된 의사결정은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기기 마련이다. 정권이 언젠가 교체될 날이 올 것이다. 똑같은 일이 발생할 때 그때는 어떻게 말할 건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책임은 누가 질까?

이번 시청료 분리 징수 건만 해도 지금처럼 밀어붙일 일은 전혀 아니다. 방송의 독립성과 공영방송의 공익성 확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할 문제다. 대통령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9일 만에 결정을 강행하다니 말이 되는가?

수신료 통합 징수는 예전부터 말이 많았던 사안이긴 하다. 한때는 시민단체와 국민들이 시청료 납부 거부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공영방송을 표방한 KBS가 독재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했기 때문이다. 독재 정권이 물러가고 방송이 민주화된 뒤로는 비교적 잠잠해졌다. 헌법재판소도 시청료 징수를 특별부담금이라는 이유로 정당성을 인정했다.

공영방송의 자주성과 독립성 확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권력의 간섭 배제와 재정의 독립이다. 개인이나 집단이 스스로 설 때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경제적 독립이다.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면 독립성은 바람 앞에 등불 신세다.

시청료 납부 문제는 공영방송의 독립성에 사활이 걸린 문제다. 시청료 분리 징수는 수입의 급감을 초래할 것이다.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프랑스처럼 수신료 폐지로 줄어드는 액수만큼 정부가 책임지는 것과 같은 대책 없이 시청료 분리 징수를 밀어붙이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고 방송 길들이기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다른 생존 방법은 사영화(민영화)하거나 광고에 의존하는 것이다. 두 방법 모두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 확보, 공익성 실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방송공사도 고액 연봉과 방송의 공공성 확보 등 제기되는 여러 문제에 대해 즉시 응답하는 모습을 보여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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