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며칠 전 경찰은 포스코 광양제철소 앞에서 고공농성 중이던 김준영 금속노련 사무처장에게 집단으로 곤봉 세례를 퍼부었다. 동영상으로 경찰의 행동을 보면서 소름이 돋았다. 광주학살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광주학살 때 맥 놓고 끌려가는 사람에게 곤봉으로 머리를 힘껏 내리치는 장면의 사진이 뇌리를 스쳤다.

광주학살 때 전두환 권력 집단은 광주시민들과 손잡고 함께 한 국민들을 폭도로 몰았다. 광주학살을 자행한 자들은 자신들이 한 행동이 정당한 공권력 집행이고 법치주의를 수호한 것이라 강변했지만 역사는 이들을 반란 세력으로 규정하고 저항한 시민들을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기록했다. 반란을 일으킨 군부 세력은 자신들이 생각한 대로 역사가 기록될 것으로 철석같이 믿었는지 모른다. 그 믿음이 망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는 채 20년도 안 걸렸다. 역사의 심판은 이처럼 준엄하다.

세월이 많이 지난 뒤 현 경찰 수뇌부는 대통령의 추상같은 법집행 요구 때문에 고공 농성자를 강경 진압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는 경찰 폭력이자 국가폭력으로 기록할 것이다.

고공 농성자에게 집단으로 곤봉 세례를 퍼부은 경찰관들과 지휘 계통에 있던 자들은 상해죄와 공권력 남용죄로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동시에 파면돼야 한다. 이미 저항할 힘을 잃고 무방비 상태에 있던 노동자에게 집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러다가 사람 죽이겠다 싶었다. 국가권력이 이성을 잃으면 그것이 바로 폭도고 폭력집단이다.

경찰이 고공 농성자를 진압할 때의 동영상을 보면 노동자는 양쪽에서 접근하는 경찰들에게 쇠막대기로 힘없이 저항할 뿐이다. 곤봉 세례를 퍼붓지 않고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다. 적나라한 폭력을 행사해 머리를 피투성이로 만들고 온몸을 짓이긴 것은 폭도의 모습과 다름없다. 물리력을 제멋대로 아무렇게나 행사하라고 경찰 기관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경찰력을 지배의 도구로 써먹었던 권력자들은 모두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고 권력의 정상에서 끌려 내려왔다.

이번 경찰 폭력 사태의 시작점은 대통령의 강경한 지시에서 비롯됐다. 지난달 23일 대통령은 “경찰은 불법 집회·시위에 대해 엄정한 법집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국민의 의중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중에 충실한 인물인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달 31일 “집회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시민의 자유를 볼모로 관행적으로 자행된 불법에 대해 경찰로서 해야 할 역할을 주저 없이 당당하게 하겠다는 게 원칙”이라 했다. 대통령의 명에 충실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윤 청장은 연일 공권력 강화를 내걸고 비례의 원칙까지 공표하고 있다.

대통령과 경찰청장이 설레발을 치는가 싶더니 경찰이 끝내 일을 저질렀다. 31일 경찰은 정권의 노동자 탄압에 저항해 분신한 고 양회동씨의 분향소를 강제로 철거했고 노동자의 팔을 골절시켰다. 노동자 여러명이 부상을 입었고 4명이 연행됐다. 같은 날 포스코 광양제철소 공장에서 고공 농성하는 노동자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구속했다.

윤석열 정권은 노동 3권 보장, 부당노동행위 중단, 하청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포스코의 사회적 합의 준수를 요구하는 고공농성 현장마저 침탈했다. 대통령은 자유를 말하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짓밟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다. 약자를 보호한다면서 약자를 짓밟는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요구가 생존권적 요구이고 기본권 중에서도 근본을 이루는 권리가 노동권이다. 권리가 짓밟힐 때 자유가 말살된다. 권리를 짓밟으면서 자유를 외치는 건 지독한 위선이다.

노동자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경찰력을 동원하고 생존권과 노동권 보장을 외치는 노동자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는 것은 박정희·전두환 독재와 다를 바 없다. 윤석열 정부가 외치는 ‘자유와 약자 보호’가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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