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SSC 나폴리 축구팀이 33년 만에 이탈리아 프로축구 1부리그 우승을 차지하자 세계 3대 미항의 하나인 도시 전체가 온통 하늘색으로 물들었다. 나폴리의 푸른 쪽빛 바다색과 함께 나폴리 축구팀 파란 유니폼이 어울리며 그림 같은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나폴리 시민들은 ‘죽은 마라도나가 다시 살아나 이탈리아 축구를 평정한 것 같다’며 폭죽을 터뜨리며 도시 전체를 거대한 축제장으로 만들었다는 게 세계 각국 언론들의 보도였다.

오래전 한국인들은 나폴리 하면 관광의 도시와 함께 축구의 도시를 떠올렸다. 이탈리아 칸초네 나폴리 민요 ‘오 솔레미오’는 한국인들이 즐기는 노래로 유명하다. 나폴리는 이탈리아 관광에서 로마와 함께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여기에 나폴리는 축구 도시로도 널리 알려졌다. 1984년부터 1991년까지 ‘신의 손’ 디에고 마라도나가 뛰던 팀이 바로 SSC 나폴리였기 때문이다. 1986년 멕시코올림픽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끄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마라도나는 1990년 SSC 나폴리가 이탈리아 리그에서 우승을 달성하는 데 수훈갑이 됐다.

2020년 60세 나이로 급사한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이탈리아 리그 우승 2회와 UEFA 우승 1회를 이끌며 그의 백넘버 ‘10번’을 영구결번으로 부여받았다. 나폴리는 홈구장을 그의 이름을 따서 디에고 아라만도 마라도나 스타디움이라 명명했으며, 지난해 10월 30일 그의 생일에 맞춰 청동색 동상을 제작해 공개했다.

올해 나폴리가 리그에서 압도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며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인 ‘철벽 수비수’ 김민재의 역할이 컸다. 한국 축구 팬들은 김민재가 수비에서 핵심적인 몫을 해내며 우승을 이끄는 것을 보면서 전성기 때 마라도나가 활약하던 나폴리를 떠올리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을 법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4강에 올랐으며, 박지성·손흥민 등이 영국 프리미어 축구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한국 축구의 대표적인 수비수 김민재가 이탈리아 최고 명문 나폴리에서 마라도나 이후 첫 우승을 이끌어 자존심을 일으켜 줬기 때문이다.

나폴리 팬들은 홈경기가 있는 날이면 한글로 김민재의 별명 ‘철기둥’이라고 적은 응원 깃발을 들고나와 열렬히 응원했다고 한다. 그는 선발 수비수로서 시즌 내내 나폴리 시민들의 성원을 받으며 흔들리지 않는 빼어난 수비력을 보였다.

‘카테나치오(Catenaccio·빗장 수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 축구에서 김민재는 올 시즌 처음 합류할 때부터 곧바로 주전을 꿰찼다. 나폴리가 올 시즌 리그 최소 실점과 최다 득점을 기록한 것을 보면 그의 활약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유도 선수 출신 아버지와 육상 선수 출신 어머니를 둔 김민재는 서구 선수들에 결코 밀리지 않는 탁월한 피지컬을 갖추고 있다. 190㎝·88㎏의 탄탄한 체격과 순간 최고 속도 시속 35㎞의 빠른 스피드는 부모의 탁월한 유전자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연세대를 자퇴한 그는 K리그 전북 현대에 입단하며 ‘제2의 홍명보’가 될 기대주로 주목받았다. 중국과 튀르키예를 거쳐 올 시즌 이탈리아 나폴리로 이적하면서 유럽 무대에 도전장을 냈던 것이다.

김민재는 태클, 헤딩은 물론이고 패스웍까지 포함해 수비수로서 이상적인 조건을 지녔다는 평가이다. 경기 흐름과 상대 선수 움직임을 읽는 능력, 배짱과 투지도 돋보인다. 올 시즌 이탈리아 무대에서 최상의 찬사를 들으며 벌써부터 영국 프리미어리그 명문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영입 얘기도 들린다.

한국 축구팬들을 가슴 뜨겁게 해주며 마라도나의 옛 영화를 다시 떠올리게 해준 김민재가 유럽무대에서 더 큰 활약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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