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대통령실은 국회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한 허상수씨(재경제주4.3희생자및피해자유족회 공동대표)에 대해 임명 거부 의사를 밝혔다. 허 대표를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에 임명하지 않는 것은 국회를 무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헌법 위반 행위이다.

대통령실은 임명 거부 이유로 공무원법상 결격사유를 들고 있다. 2021년 ‘1980년 국가보위법 관련 형사사건’ 재심에서 국가보위법 위반은 무죄가 났고 일부 사건은 선고유예 판결이 났는데 2년이 경과하지 않아 면소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주장은 형사 재심의 성격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억지 궤변에 불과하다. 재심에서 유죄판결이 나더라도 유죄판결난 기존 판결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가로 형을 집행하는 근거가 생기지 않는다(대법원 1965.3.2 선고 64도690 판결). 또한 기존에 형을 선고받고 처벌을 받은 사람을 또 처벌하는 이중 처벌의 모순이 생긴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행위는 재심의 본질적 성격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형식 논리에 사로잡혀 허 대표를 끝내 임명 거부한다면 ‘직권남용 및 권력의 부당한 행사’에 해당한다.

허 대표에 대한 임명 거부 행위는 법적 문제에 한정되지 않는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조차 절대다수가 찬성해서 의결한 사람을 정부가 임명을 거부하는 것은 한마디로 코미디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의회 몫으로 결정한 인물을 해괴한 법 논리를 동원해 임명하지 않는 것은 의회를 무시하는 행위이자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깔아뭉개는 행위이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을 제정할 때 의회 몫을 따로 정하는 것은 입법부를 존중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정부가 반헌법적일 뿐만 아니라 재심의 본질적 특성을 간과한 형식 논리로 압도적인 다수의 찬성(재석 269명의 의원 중 224명이 찬성)으로 의결된 의회의 결정을 배척하는 것은 월권행위이자 독재적 발상이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뒤 진실화해위원회의 운명이 바람 앞에 등불 신세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존재 의미를 폄훼하고 과거 흑역사에 대한 극우적 생각에 사로잡힌 인물인 김광동씨를 위원장으로 임명한 것은 과거사 진실규명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행위이다. 김광동씨는 4.3 항쟁을 왜곡했을 뿐만 아니라 광주학살 때 조선인민군이 투입됐을 가능성까지 언급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을 위원장으로 앉혀서야 어떻게 올바른 과거사 진상규명이 되고 바른 배·보상이 가능하겠는가?

한술 더 떠 의회 몫으로 국회에서 결정한 인물조차 생트집 잡아 임명 거부를 강행할 태세다.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행위다. 윤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건 구호가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이다. 허 대표에 대한 임명 거부 시도도 김광동씨를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에 임명한 것도 상식을 거스르는 것이고 법과 원칙을 우습게 아는 행동이다. 말만 화려하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무신분립이라 했다. 믿음이 없으면 모든 게 무너진다. 정권의 기초는 물론 정부의 정당성도.

허 대표에 대한 거부의 이면에 다른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하는 행동을 뜯어보면 무슨 핑계라도 찾아내서 허 대표를 배제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허 대표는 4.3 항쟁을 비롯 과거사의 진실을 알리고 기리기 위해 온몸을 바쳐온 사람이다. 그가 진실화해위원회에 입성하면 진실규명에 탄력이 붙을 것이다. 정부 내 똬리를 튼 역사 적폐 세력이 ‘허상수는 안 돼!’ 하는 기류가 있는 것 아닌가?

윤 대통령은 국회 몫 6명의 위원을 두 달이 넘도록 임명하지 않고 있다. 허 대표를 포함한 6명을 즉시 임명하고 진실화해위원회를 정상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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