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그제가 4.19혁명 63주기다. 혁명이 일어난 뒤에는 개혁이 뒤따르고 살기 좋은 세상이 돼야 정상이다.

지난 63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굴곡이 심한 역사였다. 혁명이 성공해 이승만 정권을 내쫓았는데 그 후에 들어온 민주당 정권은 미지근한 개혁도 소화하지 못했다. 사회 개혁과 민생 개혁 요구에 응답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평화통일을 향한 대중의 열망에도 응답하지 못해 쿠데타를 불러오고 말았다.

박정희 쿠데타 정권은 사회 개혁을 열망한 혁신세력 수천명을 구금하거나 구속했다. 사회혁신과 평화통일을 지향한 언론매체 민족일보를 폐간시키고 조용수 사장을 사형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정치활동정화법을 만들어 기존의 정치인들의 손발을 묶고 본인들은 구린내 풀풀 나는 부정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하고 은밀히 공화당을 조직하는 희대의 권모술수를 선보였다.

경남 거창 등 민간인 학살과 한국전쟁 직후 보도연맹원 대량 학살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도하던 사람들과 피학살자의 유족들을 구속하고 고문하고 장기간 징역을 살리는 반인권 폭력을 저질렀다. 희생자를 두 번 죽이는 천인공노할 행위였다. 사람 목숨 파리 목숨 대하듯 학살을 자행한 흑역사는 진실을 드러내고 합당한 배·보상과 책임자 처벌을 해야만 올바른 길로 간다. 그 길을 가로막고 나선 정권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다.

박정희는 삼선개헌을 강행하고 국민의 민의를 원천봉쇄하는 유신 철권체제를 만들기까지 했다. 참혹한 비극으로 끝났다. 박정희는 또 다른 비극을 우리 사회에 안기고 떠났다. 바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등장이다. 5공정권은 모든 면에서 박정희 철권 통치를 닮았다. 더 교활했다. 전두환은 언론 말살부터 시작했다. 언론통폐합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언론사를 없애고 셀 수 없이 많은 언론인을 해직시켰다. 박정희 정권에 비견될 정도의 언론 말살을 자행했다. 언론기본법이라는 악법을 만들어 언론을 뒤에서 조종하며 쥐락펴락했다.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 모두 애먼 사람 간첩 만드는 데는 달인 수준이었다. 수시로 공안사건을 터트리고 시도 때도 없이 공안몰이를 해댔다. 박정희 정권도, 전두환 정권도 국민들의 대규모 저항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박정희는 부하에게 피살당했다. 전두환은 장기집권을 꾀하다 뜻대로 안 되자 같은 군 출신에게 정권을 물려주려 했다. 노태우 정권 성립 이후 백담사행 쇼도 해 봤지만 감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고 말년에도 재판을 피할 수가 없었다.

노태우 정권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전개됐는지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큰 변화는 없었지만 대체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였다 할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9년의 퇴행이 있었지만 국민 대중이 거리로 나와 박근혜를 내쫓았다. 촛불혁명이라는 거대한 역사의 물줄기를 아무도 막을 수 없었다. 정권이 교체됐다. 문재인 정권의 우유부단과 불철저함, 그리고 뿌리 깊은 보수성과 미국 사대주의는 또 다른 퇴행을 불러왔다.

문재인 정권의 실정과 개혁의 유산은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다. 집권 1년이 다 되지만 찍은 사람조차 실망하는 사람이 많고 외교의 난맥상과 역주행, 국정 기조의 혼조와 퇴행을 목도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을 향한 굴종 외교는 두고두고 후유증을 남길 것이다. 민생이 나아진 게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우리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가 싶으면 퇴행과 역주행이 찾아왔다. 4.19영령들이 보신다면 얼마나 실망이 클까? 이제라도 4.19정신으로 돌아가자. 전두환 정권 시절 총리로 임명된 김상협씨는 “막힌 것은 뚫고 굽은 것은 펴겠다”는 취임사를 한 적이 있다. 정치가 이리만 된다면, 사회가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무엇을 걱정할까? 계층 간은 물론 남북관계도 훈풍이 불 것이고 나라 사이에도 평화가 오고 진정한 우호 관계가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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