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난해 4월 영등포에 있는 고시원에서 불이나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필자는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불이 나기 쉬운 곳이 고시원이고 불이 났다 하면 사람이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큰 곳이 고시원이라 말하고 위험한 고시원에 더 이상 사람이 살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고시원 거주자와 같은 수의 공공임대주택을 추가 확보해서 고시원 거주자가 평온한 주거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견을 진행하다 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사람이 기자회견 현장에 서 있었다. 누굴까 생각해 봤다. 원희룡씨였다. 웬일이냐고 물었더니 들어보기 위해 왔다고 했다. 혹시 이 동네 사냐고 물으니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순간 기자들이 카메라를 터트렸다. 원 장관을 중심에 놓고 사진을 찍었다. 보도된 내용을 살펴봤다. 추모 회견 내용은 가볍게 취급하고 원희룡씨를 중심으로 찍은 사진들이 실렸다. 원희룡씨가 국토부 장관으로 내정됐다는 기사가 나온 직후다.

좋게 생각하고 싶었다. 장관이 되면 고시원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 현장을 살피러 온 걸로 생각하자 했다. 하지만 장관이 된 뒤 이렇다 할 고시원 대책을 내어놓지 않았다. 전임자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원희룡씨가 기자회견 현장에 온 건 말 그대로 사진 찍으러 온 것 아닌가 싶다.

오늘도 고시원 거주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고 내일도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고시원 거주자의 실태를 파악하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찾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는 장관과 공직자가 있을 때 이들의 삶에 변화가 온다. 원 장관은 변화를 위한 노력 하지 않았다. 이 자리를 빌려 묻는다. 영등포 고시원 참사 기자회견 현장엔 왜 왔는가.

장관이 된 뒤 신림동을 포함한 서울과 도시 곳곳에서 수해가 났다. 신림동과 상도동에서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 국가가 자기 할 일을 하지 않아 국민이 목숨을 잃었다. 신림동 참사의 책임이 온전히 원희룡 장관의 책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장마철이 오기 전에 종합 점검을 해야 했다. 수해가 난 뒤에는 국가, 특히 국토부의 직무유기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첫 번째 할 일이었다.

또한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반지하 거주 침수피해주민들에게 땅속이 아니라 땅 위에 있는 안전한 집을 제공할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반지하 거주 가구에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이다.

대규모 침수 피해가 나자 원 장관은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추상적인 말 몇 마디는 했다. 오세훈 시장과 입씨름하는가 싶더니 슬그머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언론에는 잘 나오고 대책은 내지 않고. 이게 뭔가?

올해도 작년과 같은 규모의 폭우가 쏟아지면 큰 피해가 발생할 것이다. 불길한 전망을 할 수밖에 없는 건 국토부와 원희룡 장관, 서울시와 오세훈 시장이 직무유기한 탓이다.

전세 사기를 대하는 원 장관의 태도 역시 문제다. 사회적으로 전세사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자 원 장관이 언론에 자주 등장했다. 두 달 전만 해도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어놓을 것처럼 말하더니 이제는 ‘선례’를 남길 수 없어 정부가 ‘전세 피해 선 보상’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으로 보기 어렵다’ ‘모든 사기 피해는 평등하다’는 망언을 쏟아냈다. 전세사기를 보이스피싱이나 주가조작과 비교하기도 했다. 직무유기에 책임회피다. 전세사기는 정부가 사기 방지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생긴 결과물이다. 국가가 나서서 피해 보상해야 하는 이유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세 명이 목숨을 끊었다.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선례를 남길 수 없어 피해 보상대책을 안 내겠다는 건가? “당신이 국토부 장관 맞나?” 하고 외치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규가 안 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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