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이란, 무역거래 결제 시
금본위 ‘스테이블코인’ 쓰기로

브라질-아르헨도 탈달러 모색
양국, 중국과 위안화 결제 개시

한국도 한미정상회담 직후에
인니와 양국통화 결제에 합의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등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되면서 달러가 4거래일만에 1270원대까지 떨어진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하는 등 위험자산 투자 심리가 다소 회복되면서 달러가 4거래일만에 1270원대까지 떨어진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들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최혜인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미국이 러시아의 해외계좌를 동결하면서 러시아의 탈달러 행보가 본격화된 가운데 러시아와 이란이 무역거래 시 보유한 금만큼만 스테이블 코인(금 1g과 정확히 연동되는 전자화폐)을 발행해 결제하기로 합의 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탈달러 행보를 보이는 국가는 비단 달러 패권을 쥔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러시아뿐만이 아니다.

브릭스(BRICS, 신흥 5개국) 회원국이자 남미 최강국으로 꼽히는 브라질은 그동안 최대교역국이면서 달러 외환 보유고로 속앓이를 해온 아르헨티나와 달러 결제 대신 다른 방도를 마련하기로 했다.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직후인 한국도 아세안+3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회담에서 양국 교역 결제통화로 달러 대신 인도네시아 루피아화와 한국 원화로 결제하자는 데에 전격 합의했다.

러시아 전문가인 박지원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 전문위원은 3일 스푸트니크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외환보유고의 일부로 금을 사들여왔으며, 현재 금 비중은 역대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중앙은행이 지난 3월 1일 발표한 외환보유고 구성에 따르면 중앙은행의 금 보유량은 7390만 온스(Oz)로, 금액으로는 1355억 6410만 달러(당일 환율), 비중은 23.6%를 차지한다.

◆달러 패권에 금본위제 꺼내든 러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분쟁 이후 서방이 러시아 역외 외환계좌 동결, 금 매매 제재 등 금융제재를 강화하자 안정적 독자 통화시스템 구축을 가속화하고 있다. 서방과 분리된 금융시스템 구축의 한 방편으로 러시아 내부적으로 공정성과 신뢰를 담보하는 ‘금본위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또 정부 차원에서 금에 기반한 디지털 자산과 코인 활용 환경 조성을 위한 행보도 발 빨라지고 있다.

특히 우호국과 금을 기반으로 한 공동통화를 창설, 상호교역 등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모색 중이다. 러시아 매체 타스통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악사코프(Anatoly Aksakov)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금융위원회 의장은 지난달 초 “이란과의 무역 결제용으로 금을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러시아는 미국 중심의 달러화 경제 질서에 반기를 든 브릭스 회원국들이 ‘BRICS 통화’를 금 기반으로 발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라시아경제연합(Eurasian Economic Union, EAEU)도 단일통화를 모색하면서 금을 기반으로 한 공동통화 도입에 무게를 싣고 있다.

러시아는 금본위제가 현행 달러 단극체제의 불공정성과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는 하나의 공정한 수단이라고 본다. 동시에 자국 통화 루블화의 신뢰를 높이는 유력한 방법으로 보고 있다.

다만 금 자체를 당장 지구촌의 보편적 준비 통화(또는 그 증거금)로 삼겠다는 의도보다는 주요 교역국인 이란과 금을 기준으로 교환되는 스테이블 코인을 공동통화로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국은 각각 보유한 스테이블 코인을 언제든 금으로 바꿔주는 시스템을 구축해 교역과 투자 등에 이 코인을 사용하면 환율이나 일방의 인플레이션 등에 따른 불공정 소지가 없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를 통해 미국의 경제 불안과 일극 체제의 일방적 외교·통상·안보 조치에 따른 경제적 타격 및 충격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남미·아시아도 탈달러 움직임

이처럼 중국과 탈달러 공조를 추진해온 남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여기에 한국과 인도네시아 등 여러 우량국가까지 무역 시 자국통화로 결제하는 방안에 전격 합의했다. 이를 좀 더 살펴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 2일 인천 송도 컨벤션센터에서 양국 간 원화·루피아화 직거래 촉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국은행)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와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가 지난 2일 인천 송도 컨벤션센터에서 양국 간 원화·루피아화 직거래 촉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관계자들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한국은행)

폭스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의 알베르토 페르난데즈(Alberto Fernández) 대통령이 브라질 대통령 관저에 도착했다. 그는 루이즈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브라질 대통령을 만나 양국 관리들이 이웃 국가 간 무역에서 달러 결제를 배제하는 방안을 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르헨티나는 그간 만성 달러 부족 사태를 겪으며 외환보유고를 채우지 못해 허덕여 왔다. 이에 브라질 가브리엘 갈리폴로 브라질 재무장관은 “룰라 대통령이 아르헨티나로 수출하는 브라질 기업에 달러 사용을 피하기 위해 신용 한도를 제안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달러 부족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에 무역을 유지할 숨통을 틔워줄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의 가장 큰 무역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는 브라질하고만 자국통화 결제를 꾀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앞서 아르헨티나는 자국 기업들이 중국산 수입품을 위안화로 낼 수 있도록 중국과 협정을 맺었다. 룰라 대통령은 브라질과 중국이 지난달 상하이에서 양자 상거래에 위안화를 사용하기로 한 합의를 환영하는 동시에 “국제무역과 국제통화기금(IMF)에서 달러가 지배적”이라며 못마땅한 소회를 드러냈다.

여기에 한미동맹 70주년을 맞아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간 혈맹관계를 거듭 천명했던 한국도 탈달러 대열에 가담하고 있는 모습이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2일 “한국과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지난달 28일 경상계좌 거래와 직접투자 등 양국 간 거래에서 양국통화의 활용 촉진을 위해 협력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고 보도했다.

이번 협정은 한국 인천에서 열린 ASEAN+3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양국 중앙은행 총재가 서명했다. 양국 중앙은행은 이번 협력으로 은행 간 거래에서 한국 원화와 인도네시아 루피아 간의 직접 환율 견적을 보장함으로써 기업들이 거래 비용과 환율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의견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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