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우리 정부의 징용 배상 문제에 관한 결단에 대해 일본 정부는 우리 사회 다수가 기대하는 수준의 호응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지배적인 여론은 정부의 대일 외교 자세를 문제 삼고 질책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런 여론을 등에 업고 “우리는 조선 총독을 뽑지 않았다”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외교사 최대 치욕이자 오점”이라고 하는 등 정부를 맹공하고 있다. 우선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제1야당이 내놓는 말이 지나치게 원색적이고 유치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나아가 2018년 대법원이 외교적 측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결을 내린 후 문재인 정부의 ‘죽창가’ 외교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묻고 싶다. 우리가 피해자라 하더라도 국제사회에서 감정적인 한풀이식 접근은 통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세는 대일 관계는 물론이고 대미 관계마저 뒤틀리게 만들어 한국의 ‘외교적 고립’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꽉 막힌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한 정부의 결단을 그렇게 매도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사실 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노무현 정부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가 주장한 대일 외교는 국제사회에 한국과 일본 두 나라만 존재하고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본을 압도할 때나 가능한 것 아닌가? 민주당의 대일본 태도를 보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중국 외교 또는 자세가 어떠했는지 돌이켜 보게 된다.

2017년 12월 방중한 문재인 대통령은 베이징 대학교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 그리고 한국은 그 주변의 ‘작은 나라’라고 하면서 중국 중심의 인류운명공동체 구축이라는 ‘중국몽’에 동참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한 방중에 앞서 중국이 원하는 대로 미사일 방어체제 구축, 사드 추가 배치 및 한미일 군사협력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한국 대통령이 이런 자세를 보이다 보니 중국 외교장관이 인사하면서 한국 대통령의 팔을 툭툭 치는 무례를 범하기도 했다. 한편 우리 측 기자단의 사진기자들이 중국 공안 보조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을 때 어느 여권 인사는 ‘맞을 짓을 한 것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이 사건은 결국 중국 측의 조사도 사과도 없었고 한국 정부의 이렇다 할 문제 제기도 없이 흐지부지됐다. 이런 일이 도쿄에서 일어났더라면 민주당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2017년 10월 노영민 주중 대사는 시진핑 주석에게 신임장을 제정한 후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는 글을 남겼다. ‘어떠한 난관이 있어도 중국에 충성을 다하여 함께 미래를 열어가겠습니다’의 뜻이다. 주권국가의 대사라면 쓸 수 없는 표현이다. 2020년 8월 방한한 양제츠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은 서훈 국가안보실장과의 회담 장소로 서울이 아닌 부산을 관철해서 중국 관리가 한국에서 한국 관리를 호출하는 모양새가 됐다. 그해 12월 청와대를 예방한 왕이 외교장관을 문 대통령은 누가 보아도 민망한 자세로 맞이했으며, 당·정·청 주요 인사들이 중국 내 서열이 20위권에 불과한 인물에게 눈도장을 찍기 위해 총출동했다.

민주당 정부는 서해에서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 단속을 소극적으로 하고 우리 어민의 고통과 손해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더욱이 중국 해군이 서해를 중국의 내해(內海)로 만들려고 동경 124도를 작전구역 경계선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았다. 또한, 중국인들을 위해 영주권 및 국적 취득 요건을 완화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6.25 때 국군이 중공군을 통쾌하게 무찌른 곳인 강원도 파로호(破虜湖)의 이름을 중국의 요구로 바꾸려 했으며 심지어 강원도에 중공군 전사자 추모비를 세우자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2020년 초 코로나바이러스가 중국으로부터 유입된 것이 분명한데도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중국인이 아니라 중국을 다녀온 한국인이 옮긴 것이라고 애써 주장했다.

이번에 윤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를 접어두면서 양국 정상 간 교류의 물꼬를 트고 나름대로 현안을 해결한 데 반해 문 대통령은 저자세로 일관했음에도 방중 기간 대부분 혼밥을 하는 등 홀대받다 빈손으로 돌아왔다.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본 결과라 할 것이다. 민주당은 일본에 대해서는 그렇게도 자존심을 내세우면서도 중국에 대해서는 왜 굴종적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더욱이 중국과는 과거사가 없었는가?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삼전도 굴욕’ 운운했는데 우리가 취해야 할 교훈은 당시 조선 조정이 어리석게도 명분론에 빠져 외교에 있어 무엇이 국익인지를 분별하지 못해 수많은 백성이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는 점일 것이다. ‘죽창가’를 계속 부르는 것과 현 정부의 대일 외교 어느 쪽이 더 많은 국민을 위한 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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