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윤 대통령의 국빈 방미가 끝났다.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에 한국 대통령의 방문이라 미국 측은 각별히 예우하고 세심히 배려한 것 같다. 우리 대통령이 미국에 가서 환대를 받은 것은 마땅히 기뻐할 일이다. 대통령실과 일부 매체는 환대를 받은 것을 넘어 성과도 많았다고 평가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지 꼼꼼히, 그리고 냉철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안보 분야에서는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미국에게서 진전된 확약을 얻어낼 것인지가 관심사였는데 이른바 ‘워싱턴 선언’은 기존의 핵우산 및 확장억제 제공 방침에 화려한 수사만 덧붙인 말의 성찬으로 보는 것이 맞는 평가라 본다. 신설되는 한·미 핵협의그룹(NCG)의 협의(consultative)는 미국·NATO 핵기획그룹(NPG)의 기획(planning)보다 낮은 수준의 대책이며 이미 운영되고 있는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와 본질에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워싱턴 선언’의 관련 부분에 대해 우리 쪽이 ‘사실상 핵 공유’라고 확대해석하자 미국 측은 즉각 결코 그런 것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공동성명에서 글로벌 포괄적 전략 동맹, 인도·태평양 전역에서의 협력 확대, 철통같은 양자 협력 강화 등의 소제목 아래 적시된 요소들을 보면 한마디로 미국의 글로벌 전략 수행에 있어 한국은 어떤 실질적인 부담을 감내해야 하느냐에 관계없이 주니어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물론 그것이 우리 국익에 100% 부합하는 것인지는 별개 문제이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 문제는 대통령실에 따르면 이번 회담에서 논의되지 않았다고 하나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한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의 다음 단계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할 것’이라고 했다.

반도체법 및 인플레 감축법(전기차 보조금) 관련 우리 기업들의 우려에 대해서는 공동성명에 ‘한미 양국이 기울여온 최근의 노력을 평가하였다’라고만 돼 있다. 특히 미국이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 지원을 내걸고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하면서 부과한 조건들, 즉 중국 투자 제한, 해당 기업의 핵심기술에 대한 접근 및 경영 실적 조사 등 독소조항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우려가 해소된 것이 거의 없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이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러지의 반도체 판매를 금지해 반도체가 부족해질 경우 한국 기업들이 그 부족분을 채우는 일이 없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또한, 한국형 원전 수출에 대해 여전히 미국 상무부와 웨스팅하우스가 훼방을 놓고 있다. 미국이 말로는 동맹을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자국 이기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미국과 거리 두기’ 정책으로 훼손된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강화해야 하는 것은 필요한 과제이다. 그런데 최근 윤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동맹’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갖고 있는지 묻게 된다. 이번 방미가 동맹 70주년에 즈음한 것임을 고려하더라도 과장된 수사가 상당했다. 윤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가리켜 ‘정의로운 동맹’ ‘강철같은 동맹’이라고 했다. 역사적으로 많은 나라가 필요에 의해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었지만, 동맹이란 기본적으로 국가 간에 이익을 주고받는 틀인데, 이러한 미사여구들은 국제사회의 생리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또한 “한·미는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관계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라는 보편적 가치에 기반한 동맹”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형제가 여러 가지 이유로 싸울 수 있지만, 다툰다고 형제 관계나 가족이 아닌 건 아니지 않나”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마치 성리학에 매몰돼 개인 간 윤리를, 도덕성을 기대할 수 없는 국가 간 관계에까지 적용했던 조선 조정의 명나라에 대한 인식처럼 들린다. 어느 기준에서 보든 영국과 미국은 특수한 관계일 것으로 여겨지지만 2차 대전 당시, 그리고 그 이후에도 미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영국의 입장을 경시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마도 대통령 참모들도 한국은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과는 다른 특수한 동맹국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미국 측으로부터 받은 환대 때문에 그러한 순진무구한 동맹관이 더욱 굳어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미국에 매달리면서 자신이 미국이라고 착각하고 제3국을 대한다면 제3국은 물론 미국조차도 속으로는 비웃지 않을까? 대학 시절 어느 교수가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약점이 많은 나라로서 어느 정도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데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필요 이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데 있다’라고 한 말이 생각난다. 대통령의 외교안보 참모진이 하루바삐 투철한 국익 의식과 풍부한 지식을 갖추고 지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인재들로 채워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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