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미국은 지금까지 1200억불이 넘는 엄청난 돈을 퍼부으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맞서도록 독려하고 있는 가운데 대만해협의 긴장을 고조시키면서 중국도 자극하고 있다. 공공연히 수년 내 미·중 무력충돌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과연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까? 이것이 미국이 패권을 유지하는 데 현명한 대처일까?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래 중국을 제1의 잠재적 적국으로 간주하고 중국을 견제하는 조치들을 취해왔다. 지난 수십 년간 중국 경제의 비약적인 성장은 역설적으로 미국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에 따른 세계화의 결과이다. 그동안 미국 자본은 중국 시장에서 막대한 이익을 얻었으며 미국 소비자들도 중국의 저렴한 노동력 덕분에 저물가 혜택을 누려왔다. 미국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중국을 견제하기로 했는데 세계화의 결과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심화돼 중국에 타격을 주려면 미국도 피해를 입게 되므로 현재로서는 첨단기술 분야에서의 우위만이라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보조금을 미끼로 한국과 대만의 반도체 업체들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서방에서는 중국의 정치·경제적 미래에 대해 희망적(?) 기대를 하고 있으나 중국의 저력과 커진 덩치를 고려할 때 과연 서방의 희망대로 중국이 약화될지는 미지수이다. 미국이 현재 중국을 핵심적인 첨단기술 분야의 공급망에서 배제하려고 하나 이 방법만으로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멈추게 하기에는 이미 늦은 감이 있다. 중국은 명목 GDP에서 미국을 거의 따라잡았으며 경제적 의미가 더 큰 지표인 구매력 평가 기준 GDP에서는 이미 수년 전에 미국을 앞질렀다. 결국, 미국으로서는 중국을 주저앉히려면 여전히 우월한 군사력을 동원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펠로시 하원의장이 타이베이를 방문했고, 최근 매카시 하원의장이 방미 중인 차이잉원 대만 총통을 만난 것은 예사롭게 볼 일이 아니다. 미 행정부는 대만에 대해 다소 자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나 의회가 나서서 바람을 잡아주고 있다. 그래서 일부 분석가들 사이에서는 차이잉원 총통이 제2의 젤렌스키가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한편, 많은 사람이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에 대비해 러시아와의 관계는 관리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2014년 우크라이나 내전 발발 이래 현재까지의 상황을 보면 과연 미국이 전략적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를 글로벌 강국이 아니라 지역 강국 정도로 치부해 왔다. 러시아는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지만 경제 지표로만 보면 미국의 상대가 되지 않으며 실제로 중국과는 달리 팽창주의적 정책을 펴기보다는 오히려 거대한 영토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안보에 몰두했다. 무엇보다도 구소련 공화국들이 독립 이후 영향권에서 떨어져 나갈까 노심초사했다. 설사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더라도 미국에는 어떠한 실존적 안보 위협도 줄 수 없으나 러시아로서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의 전진 기지가 된다면 악몽이다. 현재 전황을 보면 소모전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계속될 것으로 보이며 이제까지 보아온 것처럼 러시아가 물러설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마디로 말해 미국은 직접 개입하고 있지는 않지만 달성할 수 있는 목표에 비해 너무나 많은 자원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우리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도·감청 보도에서 드러났듯이 미국은 한국산 포탄을 공출(?)해야 할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미국의 숨은 의도로 거론되는 러시아의 정권 교체 나아가서는 러시아의 분열이라는 목표는 과연 달성할 수 있는 것인가? 미국의 이러한 비합리적인 정책은 수백년에 걸쳐 세계 곳곳에서 영국이 러시아와 충돌하면서 형성된 뿌리 깊은 러시아에 대한 공포 또는 혐오증이 2차 대전 이후 미국에 전이됐고 냉전 시대 소련과 대립하면서 더욱 강고해져 냉전이 종식된 후 한 세대가 지났음에도 아직도 이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보인다.

1960년대 초 중·소 분쟁이 발생한 이후 중국과의 동맹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중국과 준동맹 수준으로 밀착하고 있다. 러시아의 막강한 군사력과 엄청난 자원 그리고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이 합쳐진다면 과연 미국이 감당할 수 있을까? 미국의 동맹인 한국으로서는 당연히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는 끔찍한 상황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당장 대만해협에서 미·중 사이 무력충돌이 일어나는 경우 그 여파가 한반도에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한국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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