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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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일본대사관은 지난 16일 남산 소재 모 호텔에서 일본에서 국경절로 기리는 나루히토 천황의 생일 리셉션을 개최했다. 이에 대해 일부 매체들은 한국 땅에서 울려 퍼진 기미가요, 무서운 내막’ ‘싫다는데, 일왕 생일 파티, 굳이 서울서’ ‘처음으로 군국주의의 상징인 기미가요 연주됐다등 비난을 쏟아냈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천황의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를 개최하고 그 자리에서 일본 국가를 트는 것이 그리도 예민하게 반응할 일인가?

우선 국제사회에서는 모든 나라가 재외공관에서 국경절 행사를 개최한다. 주재국 인사들을 초청해 교류의 시간을 가지며 주재국 사회에 자국을 더욱 인식시키는 것이다. 국경절은 대부분 건국일, 독립일 등이고 군주국은 군주의 생일을 국경절로 삼는 것이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는 10.3 개천절을 맞이해 재외공관이 국경절 리셉션을 개최하고 있다. 입헌군주국인 일본이 군주의 생일에 국경절 리셉션을 개최하는 것에 대해 , 싫다는데 일본 임금의 생일 파티를 서울에서 하냐?’ 식의 지적은 억지 또는 생트집이고 제3자가 볼 때 설득력이 없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군주였던 히로히토 생일을 기리는 행사라면 한국 사회가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있으나 현 나루히토 천황은 1960년생으로서 일본의 한국 병탄과는 관계가 없다.

또한, 재외공관이 개최하는 국경절 행사에서 자국과 주재국의 국가가 연주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관례이다. 기미가요가 일제 강점기에 조선사람들도 부르도록 강요했던 것이어서 식민지배를 연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외국 대사관이 개최하는 행사에서 자국 국가를 연주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옳지 못하다. 우리는 1965년 일본과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했으며, 일본은 우리의 적국도 아니다. 대한민국은 현재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며, 1인당 실질국민소득에서는 일본을 추월했다. 이제 일본에 대해 대범하고 쿨하게 접근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 일각에서는 일본이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하는데 그간 일본 지도자들로부터 여러 차례 사과또는 사죄가 있었다. 이러한 일본 측의 사과또는 사죄에 대해 사람들은 표현이 충분치 않다’ ‘진정성이 결여돼 있다’ ‘장관들은 개별적으로 딴소리를 하지 않느냐등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주권국가 간 사과또는 사죄는 요구하는 쪽에서 만족할 만한 수준이 나오기 어려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영국이 인도에 대해 그리고 프랑스가 베트남에 대해 과연 제대로 된 사과 또는 사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일본 군주의 호칭에 대해서 천황이냐 왕이냐 논란이 있는 것은 우리가 전근대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 나라 또는 민족이 자신의 우두머리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는 그 나라 또는 민족이 알아서 할 문제이다. 일본이 1868년 메이지 왕정복고 후 조선 조정에 보내온 외교문서에 일본의 왕을 천황이라고 호칭했는데 조선 조정이 이를 문제 삼은 것이 유명한 국서 거부사건이다. 당시 조선은 황제는 중국에만 있다고 주장했다는데 존화 사대주의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조선조 500년 동안 왜 칭제할 결기가 없었나 하는 질문도 던지고 싶다. 1897년 러시아 공사관에서 나온 고종은 그해 가을 대한제국을 선포했는데 일본을 포함해 당시 국제사회에서 조선 왕이 칭제한 것에 대해 반대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사실 일본 군주의 호칭 문제는 정부 차원에서는 오래전 정리된 바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일본을 방문하면서 일본의 군주에 대해 천황으로 불러 주는 것으로 정리했다. 정작 해방된지 70여년이 지났음에도 일본 제국주의가 우리 민족에게 열패감을 심어놓은 식민사관은 아직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으면서 공연히 일본 군주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놓고 논란이 계속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일본의 우경화’ ‘재무장’ ‘군국주의화등 담론을 제기하면서 지나칠 정도로 우려를 표명해왔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 간 관계에서 우리 편이냐 아니면 적이냐는 언제나 가변적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넘게 전쟁도 하고 자주 반목했으나 필요하면 상호 협력하고 지원했다. 서로 싸우다가도 공동의 위협이 생기면 협력하는 것이 국가 간 관계의 생리이다. 일본의 재무장만 한국에 위협이고 중화인민공화국의 엄청난 무력 증강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일본을 원망하고 미워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경계와 협력을 병행하는 것이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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