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언론정보연구소장

 
대한농구협회 홍보이사로서 2주 연속 국제대회를 치르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30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벌어진 아시아-태평양 대학농구 챌린지 결승전을 마치고 바로 다음 날 광주로 이동, 세계 대학생들의 축제인 2015 광주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농구 국제협력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14일까지 농구운영본부가 있는 광주 동강대 체육관에서 국제 임원들의 업무 보조 및 편의제공을 하는 의전 관계가 주로 하는 일이다.

지난 2일 유니버시아드대회 농구 최종 리허설을 준비하면서 몇몇 관계자들이 수군댔다. 보통 국제대회를 할 때와는 다른 양식 때문이었다. “경기 시작 전 국가연주가 없다. 시상식 때도 우승국 국가를 연주하지 않네” 하며 의아해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동안 몰랐다가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운영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국가 연주가 없다는 점이다. 유니버시아드대회는 경기 시작 전 의식과 시상식 등에서 국가(國歌)를 연주하지 않는다. 경기 시작 전에는 간단한 선수 소개만 있었고, 최종일 시상식에서는 우승국의 국가 대신 ‘젊은이의 노래(Gaudeamus Igitur)’라는 제목의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공식 찬가를 준비된 음원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지난 1995년 일본 후쿠오카 U대회서 취재기자로 참가한 바 있던 필자는 이번에 공식 운영요원으로 처음 참가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

보통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 종합 국제대회나 단일 국제대회서는 참가국들의 국가를 경기시작 전이나 시상식 때 연주한다. 지난주 아시아-태평양 대학농구 챌린지서 매 경기 시작 전 양 팀 선수들이 체육관에 걸린 참가 국기를 향해 서서 양 국가가 연주되는 의식을 가졌다. 챌린지대회에 참가하는 국가팀에 선수단 명단과 함께 국가 음원을 파일로 보내도록 사전 공문을 보내는 것은 반드시 빠져서는 안 되는 필수 준비항목이다.

각국의 애국가는 감정을 복받치게 하고 애국심을 불러온다. 국가 연주를 들을 때, 선수들과 국민들의 애국심이 불타오르게 된다. 애국가는 국민들에게 확고한 국가관을 심어줘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각인시키는 기제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빙판의 여왕’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시상식에서 애국가가 연주될 때, 많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고대 그리스에서 태동한 올림픽은 원래 도시 국가들의 대항전으로 시작했는데, 근대 올림픽으로 부활하면서 올림픽은 국가 간 경쟁무대로 점차 변해갔다. 국가 간 경쟁을 부채질하는 데 애국가 연주도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

U대회가 왜 국가를 연주하지 않는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거기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인류의 오랜 숙제인 이념 갈등을 없애기 위한 특별한 묘안이 국가 연주 폐지였다. 유니버시아드는 1959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처음 열렸는데, 당시에는 FISU와 사회주의 국가의 국제학생연맹(UIE) 대회가 각각 따로 개최됐다. FISU는 이념 갈등을 없애고자 1961년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2회 대회부터 국가 대신 공식 찬가로 바꿨다. FISU 찬가에는 유니버시아드가 기록을 위한 경쟁이 아닌 국경과 이념, 종교와 문화를 초월하는 지구촌 젊은이들의 화합 제전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유니버시아드의 진정한 목적이 국가 간 경쟁이 아니라 그야말로 전 세계 대학생들의 축제라는 것을 상기하자는 취지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지난 수십 년간 스포츠에서 비약적인 성장을 해오면서 유니버시아드를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과 같이 스포츠 국력의 경쟁무대로 여겨 총력적인 체제를 가동해왔다. 1960년대부터 참가하면서 각 종목 최고의 국가대표를 대학교에 편법으로 등록시켜가면서 메달 획득에 주력하는 성적지상주의로 국위를 선양하는 데 주력했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들도 유니버시아드에서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 등 메달을 따면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등에 못지않은 비중을 두며 큰 관심을 보였다.

1995년 후쿠오카 U대회서 필자를 비롯한 많은 국내 신문과 방송 기자들이 현지 취재를 하면서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올림픽과 달리 순수 대학생 스포츠 축제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참가하는 외국 대학생들은 승부에 연연하기보다는 참가 그 자체를 즐기며 스포츠를 통해 배움과 소통, 화해와 협력의 무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외국 기자들의 숫자가 올림픽 등보다 월등히 적었던 것은 유니버시아드대회가 올림픽과 같은 긴박한 스포츠 취재 경쟁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

2000년대 들어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은 해외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취재 기자단을 거의 파견하지 않고 있다. 대회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참가하는 한국 선수들의 성적도 예전보다 월등히 작게 다룬다. 1997년 전주-무주 동계 U대회와 2003년 대구 하계 U대회에 이어 세 번째로 국내서 열린 2015 광주 하계 U대회는 이제 좀 더 성숙한 자세로 맞아야 할 것이다. 성적보다는 우리 대학생 선수들이 서로에 대한 배려와 존중, 희생과 나눔의 가치를 공유하며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지혜와 도전, 용기를 배울 수 있는 교육과 발전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격려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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