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필 전시회 
김윤희(1938~ )
가서 보았다
수십 년 전 그때 청춘의 끓는
피 찍어 써 보낸
봉함 친전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달필 건너
초서체 훨씬 지나
암호 악필
일종의 극비문서
이제야 여겨 보니
희귀체 아날로그
최후통첩이던 것을

[시평]
컴퓨터가 전국민화하면서 펜이나 연필로 쓰는 글씨가 희귀해졌다. 예전에는 모든 문인들이 만년필로 원고지에 또박또박 새기듯 글을 써 내려갔는데, 지금은 컴퓨터에서 글을 쓰는 문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문학박물관이나 문학기념관에서 문인들이 남긴 친필을 희귀한 자료라며 전시회를 하는 때가 있다. ‘친필(親筆)’, 이제는 컴퓨터로 인해 그 친필이 귀해진 세상이 된 것이다.

이런 친필 전시회의 어느 귀퉁이에서 문득 만난, 젊은 날 어느 문인이 자신에게 보낸 편지 한 장. ‘수십 년 전 그때 청춘의 끓는 피 찍어 써 보낸 듯한 봉함 친전’을 만난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희귀한 문서가 되어버린 듯한, 그 친필 편지. 바로 이것이 아날로그, 그 희귀한 친필이구나. 아날로그의 그 따뜻한 인간미 넘치던 그 시절은 이제 끝이 났다는, 바로 그 최후통첩이로구나. 이제 전시회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인간미 넘치는 그 친필….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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