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흔히들 북한의 ‘태양궁전’에는 김일성과 김정일 두 사람만의 관이 안치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의 관이 더 있다. 바로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그것으로 김일성 김정일과 함께 사회주의 ‘계획경제’는 이미 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북한의 계획경제는 소유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북한의 헌법과 민법에 따르면, 국가 소유의 대상에는 원칙적으로 제한이 없다. 특히 지하자원, 산림자원, 수산자원 등의 자연부원, 철도, 운수, 항공, 항만, 체신, 은행, 주요 공장, 기업소 그리고 각급 학교 및 주요 문화보건시설 등은 오직 국가만 소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경제의 지배적 소유형태는 국유이며, 다만 농업부문, 즉 협동농장에서만 공유가 지배적 형태로 나타난다. 북한은 1965년 ‘계획의 일원화, 세부화’ 방침을 통해 시장조정을 말소하고 관료적 조정을 전면화했다. 이는 당과 국가의 정책을 반영한 계획당국의 의도대로 수립하도록 보장하는 체계이다.

계획경제는 중공업, 경공업, 농업 등 모든 생산부문을 갖추며, 기술적 자립을 이룩하는 것으로 튼튼한 원료 및 연료기지를 구축하는 것을 토대로 한다. 북한이 중공업 우선발전 노선을 고집하는 이유는 ‘경제-국방 병진노선’과 관련이 있다. 경제-국방 병진노선은 ‘인민경제의 발전 속도를 조절하더라도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더 큰 힘을 돌려야’ 한다는 논리로서 북한은 1966년부터 이 노선을 뒷받침하기 위해 국방비를 현저히 증가시켰다. 이는 일반경제와 분리된 군수경제의 비대화를 초래했다.

그러나 이미 계획경제는 최소한 김일성 사망과 함께 관속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북한 경제에서 계획화 영역이 작아지고 시장영역이 확산한 결과 북한경제를 더는 ‘계획경제’라고 부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이석기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달 27일 국회 한반도평화포럼과 대북지원단체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등의 공동주최로 열린 ‘2015 남북관계, 돌파구를 열자’ 토론회에서 미리 배포한 자료를 통해 이렇게 주장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특히 소비재와 서비스 부문에 대해 “시장을 통한 상품과 용역의 거래가 보편적이며, 계획이나 명령에 의한 배분은 오히려 예외적인 상황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표적 사례로 북한에서 민간이 직접 투자·운영하는 시외버스 망을 꼽았다. 1∼2명의 민간인이 버스를 조달해 ‘도 인민위원회 운수사업부’라는 공식기관 소속으로 시외버스 사업을 하는데, 이는 ‘개인이 투자·경영하지만 법적으로 국영기업이나 국가기관 소속의 형태를 취하도록 하는’ 제도적 타협의 성공 사례로 평가된다. 이어 북한이 생산, 자재조달, 제품 처분, 노동자 임금 등의 전반적 영역에서 기업의 의사결정 권한을 대폭 키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기업의 재량 확대로 “기업 소유권이나 관련 투자 영역을 제외하고 기업의 경상적 활동은 거의 온전히 시장을 통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북한 당국이 운영하는 주요 국영기업 554개 중 40% 이상이 평양과 그 인근 지역에 몰려있고, 전체 기업의 3분의 2가량은 중화학 업종에 집중돼 있다. 이들 기업 중 흑자를 내거나 정상 경영이 가능한 기업은 전체의 10% 이하인 50개 안팎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김일성은 자신의 관 곁에 ‘계획경제관’이 따라온 것을 모르고 주석궁전에 안치됐고 김정일은 계획경제관을 뒤따라 이른바 ‘태양궁전’에 묻혔다. 김일성 김정일이 다시 환생할 수 없듯 사회주의 ‘계획경제’ 역시 북한에서 되살아날 전망은 없다. 아마 머지않아 계획경제는 부관참시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획경제뿐이 아니다. 계획경제관을 해체하는 날이 오면 김일성 김정일 시신 역시 함께 부관참시 될지도 모른다. 김정은이 정녕 조상의 안녕을 바란다면 하루빨리 계획경제 슬로건을 자발적으로 내리고 개혁과 개방을 통해 우월한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최소한 그렇게 하여 더 이상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한다면 선대의 부관참시만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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