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사)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장성택 숙청과 처형을 결정한 지난 2013년 12월 8일 정치국 확대회의 이후 무려 1년 2개월여 만에 다시 평양에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개최됐다. 지난 2월 18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주민생활 향상’을 가장 중요한 국가적 목표로 내세우며 당의 역량을 이에 집중할 것을 독려했다. 또한 이번 회의에서는 ‘부정부패’ 척결을 강조하는 결정서도 채택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김정은 동지의 지도 밑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가 18일 평양에서 개최됐다”며 “김정은 동지께서 역사적인 결론을 하셨다”고 밝혔다. 김 제1위원장은 “인민들에게 유족하고 행복한 생활을 마련해주는 것은 장군님(김정일)의 유훈 중의 유훈”이라며 “인민들의 식량 문제, 먹는 문제, 입는 문제와 관련해 주신 유훈부터 먼저 집행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업을 하나 조직해도 인민의 요구와 이익에 저촉되는 요소나 공간이 없는가 하는 것을 잘 따져보고 인민들에게 부담과 불편을 주지 않게 조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 이틀 후에 열린 이번 회의에서는 김 위원장의 유훈 관철 방안과 ‘조직 문제’가 안건으로 상정됐으며 ‘위대한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우리 당과 혁명의 영원한 지도적 지침으로 틀어쥐고 끝까지 관철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결정서가 채택됐다.

결정서도 “인민생활에서 걸린 문제, 인민들이 가슴 아파하는 문제들을 푸는 데 자기의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치도록 할 것”이라며 주민생활 향상에 방점을 찍었다. 특히 결정서는 배격해야 할 악습으로 ‘세도(권세의 부당한 행사)’ ‘관료주의’ ‘부정부패’를 꼽았다. 북한의 공식 문서가 세도와 관료주의 척결을 강조하는 것은 상투적 표현이지만 부정부패를 거론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에서 시장경제 요소가 확산하면서 간부들이 권력을 남용해 이권을 챙기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결정서는 “김정은 동지께서는 당의 유일적 영도에 도전해나선 현대판 종파분자들을 단호히 적발분쇄하셨다”며 장성택 처형 사건도 언급하고 김 제1위원장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강조했다. 최룡해 당 비서는 보고에서 김 위원장의 유훈 관철에 ‘획기적인 전환’을 일으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봉주 내각 총리, 리재일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김춘섭 자강도당 책임비서, 리만건 평안북도당 책임비서, 전용남 청년동맹 위원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게재한 관련 사진에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이 김 제1위원장 옆에 앉은 모습과 최태복 당 비서가 발언하는 모습도 담겼다. 중앙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조직 문제도 논의됐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이 중요한 국가적 결정을 내리는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를 개최한 것은 장성택 숙청을 결정한 2013년 12월 8일 회의 이후 처음이며 김정은 시대 들어 세 번째다. 당 중앙위 정치국 확대회의에는 정치국 위원과 후보위원뿐 아니라 당·정·군 주요 간부들이 방청으로 참석한다. 지방의 도, 시, 군의 책비시서와 조직비서들, 군대의 군단급 정치위원과 부군단장급까지 참여해 김정은의 직접지시를 접수한다. 앞서 북한은 지난 10일에는 확대회의보다 규모가 작은 당 중앙위 정치국 회의를 열어 광복 70주년과 당 창건 70주년인 올해 ‘첨단 무장장비’ 개발에 힘을 쏟기로 결정했다.

김정은이 이번에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한 이유는 간단하다. 5월 모스크바행과 4월 반둥회의 참석을 준비하고 있는 김정은이 자체 내의 성과 창출에 갈증을 느끼고 있으며, 따라서 엘리트 집단의 독려가 절실했던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시스템의 개혁 없이 북한 체제가 새로운 성과를 이루어낼 수 없다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바로 이 점을 김정은은 간과하면서 이벤트식 회의소집을 반복하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다. 진정한 북한 체제의 작동은 먼저 낡은 관료체제를 개혁한 다음 지극히 정상적인 수순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할 때 가능하다는 사실을 김정은이 하루빨리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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