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프란치스코가 18일 필리핀 마닐라 리살공원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어린이들, 마약·매춘 몰려… 신은 왜 내버려 두나요?”
12세 소녀 질문에 울먹인 교황, 위로·사랑 메시지 전해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일주일간의 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귀국했다. 스리랑카에서는 화합과 진실 규명의 메시지를 전했고, 필리핀에서는 위로와 사랑 실천을 강조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각)부터 아시아 순방에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13~14일 이틀간 스리랑카를 방문한 뒤 15~19일까지 닷새간 필리핀을 찾았다. 18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집전한 미사에는 최대 700만명에 이르는 인파가 운집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렸던 역대 교황의 미사는 요한 바오로 2세의 1995년 필리핀 집회 때로 당시 500만명이 모였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의 미사에는 폭우 속에서도 사상 최대 인파인 600~700만명이 운집한 것으로 집계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필리핀을 방문하기 전, 국민의 70%가 불교신자인 스리랑카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화합과 진실 규명의 메시지를 전했다. 스리랑카에서는 불교를 믿는 싱할리족이 중심인 정부군과 힌두교도인 타밀족 반군과의 내전이 26년 동안 지속됐다가 지난 2009년 정부군이 민간인 4만여명을 포함한 타밀족 반군을 학살하면서 내전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마힌다 라자팍세 전 대통령은 유엔 전쟁범죄행위 조사단에 협조하기를 거부했다.

교황은 스리랑카의 평화와 부족 간 상처 치유를 위해 내전 기간 동안 발생한 일들의 진실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가 재건을 위해서는 사회기반시설의 개선과 물질적인 필요를 충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장려하고 인권을 존중하며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통합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스리랑카에 이어 아시아 최대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필리핀 국민의 열렬한 호응 속에 닷새간의 일정을 진행했다. 교황은 특히 지난 2013년 초대형 태풍 ‘하이옌’에 큰 피해를 입은 중부 타클로반 지역을 방문해 이재민을 위로했다. 타클로반은 당시 태풍 하이옌에 약 73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17일 태풍 ‘메칼라’의 영향으로 돌풍이 불고 비가 내린 타클로반 지역을 찾은 교황은 “로마에 있을 때 이곳에 와야 한다고 생각해 여러분을 만나러 왔다”면서 이재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15만명이 모인 가운데 폭우 속에서 진행된 미사를 집전한 교황은 이후 태풍 피해 가족과 점심도 함께 했다. 하지만 궂은 날씨 때문에 예정보다 4시간 일찍 타클로반을 떠나야 했다.

다음 날 마닐라에서 필리핀 교회의 최대 축일 가운데 하나인 아기예수 축일 미사를 거행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노란색 우의 차림으로 필리핀 서민 교통수단인 ‘지프니’를 타고 행사장에 입장했다. 그는 소외 어린이 등 약자에 대한 관심과 도움을 호소했다.

교황은 아이들을 죄와 악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이들이 희망을 잃고 거리로 나서지 않도록 돌봐야 한다는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또 “어린이들이 죄와 악에 유혹당하거나 순간의 쾌락과 천박한 유희로 가득찬 말에 현혹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앞서 16일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과의 면담을 가진 교황은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진실된 태도와 조치를 보여야 한다”고 전한 바 있다.

▲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닷새간의 필리핀 방문 마지막 미사를 볼 마닐라 리잘 공원에 600만명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교황의 필리핀 방문 일정 중 마지막 행사인 18일 야외 미사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600∼700만명이 참석해 화제가 됐다.

GMA방송은 당국을 인용,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를 마친 이날 오후 5시 30분을 기준으로 600~700만명의 군중이 몰렸다고 전했다. 필리핀 경찰은 군중 규모를 약 600만명으로 추정했고, 바티칸 대변인 페레디코 롬바르디 신부는 필리핀 대통령실이 이날 교황 미사에 최대 700만명에 이르는 군중이 참가했음을 전해왔다고 말했다.

롬바르디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많은 군중을 끌어 모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종전 기록은 지난 1995년 필리핀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같은 장소에서 집전한 미사에 몰린 약 500만명이었다.

이에 앞서 교황은 이날 오전 마닐라의 산토 토머스대학에서 약 20만명이 참석한 ‘청소년과의 대화’에서 소외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촉구했다.

특히 이날 12세 소녀가 울면서 자신이 살아온 길을 이야기하다 “많은 어린이들이 마약과 매춘에 내몰리고 있어요. 신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거죠? 왜 우리를 도와주는 어른들은 거의 없는 건가요?”라고 묻는 물음에 할 말을 잊고 울먹였다.

질문을 받은 교황은 소녀를 안아줄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AP통신은 “교황은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며 “교황은 미리 준비한 영어 연설을 하는 것도 포기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시간이 지난 뒤 대중을 향해 “소녀는 아무도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유일한 사람이다”며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 마약을 먹는 아이들, 집이 없는 아이들, 방치되고 착취당한 아이들, 사회가 노예로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 우리가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말이다”라고 말했다.

이 소녀는 몇 해 전 집을 잃고 거리에서 살다가 최근 교회가 운영하는 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소녀로부터 예상 밖 질문을 받은 교황을 현장에서 지켜본 AP통신은 “교황이 거의 울 뻔했다”고 전했다.

교황은 19일 아시아 방문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낙태와 인공피임법 반대에 대한 입장을 설명했다. 그는 “토끼처럼 계속 출산을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해외 주요 언론매체들은 교황이 서구권 단체, 기관, 국가들이 산아제한과 동성애자 권리에 관해 급진적이고 서구적인 관념을 개발도상국들에 강요하고 있으며 때로는 이를 개발 원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고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교황은 “어떤 사람들은 좋은 가톨릭 신자가 되려면 마치 토끼처럼 (출산을 많이) 해야 한다고 믿는다”며 그렇게 할 필요는 없으며 안전하고 책임 있게 낳고 키울 수 있는 범위에서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민족은 이데올로기적인 식민화를 겪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낙태나 인공피임법 외에 가톨릭교회가 인정하는 출산 제한 방법이 많다며 “책임질 줄 아는 부성(父性)”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 1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닷새간의 필리핀 방문 마지막 미사를 볼 마닐라 리잘 공원에 600만명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한편,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날 올해 말께 아프리카를 순방하겠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아프리카 방문은 교황 취임 후 이번이 처음이다. 또 오는 7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파라과이 등 남미 3국도 방문할 것임을 밝혔다.

이날 미국 언론들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는 9월 22일부터 사흘간 미국을 처음으로 공식 방문하며, 이때 미 의회 상·하원 합동연설을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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