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을 든 예수 성화의 유리원판 사진. 작자 미상 (사진제공: 정성길 명예박물관장) ⓒ천지일보(뉴스천지)
양의 특성과 성경 속 양과 목자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을미년(乙未年) ‘청양(靑羊)의 해’가 밝았다. 온순함의 대명사인 ‘양(羊)’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평화와 행운은 물론 재물과 복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기독교의 경서인 성경에는 유독 양에 대한 기록이 많다. 양을 주요 생계 수단으로 활용했던 이스라엘의 특성이 반영되기도 했지만 실제 양이 갖는 특성 때문에도 많이 등장한다.

양은 소과에 속하는 초식 동물로 보통 착하고 순한 동물로 인식된다. 또한 양은 은혜를 아는 동물로도 여겨지는데, 이는 양이 무릎을 꿇고 있는 시간이 많아 무릎에 털이 없고 굳은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를 보고 옛날 사람들은 ‘양도 무릎을 꿇고 어미 은혜를 안다’고 했다. 지금도 ‘양 같다’라는 말은 순하고 착하고 평화로운 이미지로 널리 쓰인다.

야생이었던 양이 인류에 의해 가축화된 것은 신석기시대보다도 훨씬 이전이다. 개에 이어 두 번째로 야생에서 길들여진 동물로 알려졌다. 유목민들이 양식과 옷감을 얻으려고 기르는 양은 극소한 양의 물과 잔디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고, 건조한 시기에는 새로운 풀밭과 물을 찾아 이주할 수 있기에 지중해 동부 메마른 지역에서는 자연적으로 삶의 일부가 됐다. 또한 종교적으로는 신성한 동물로 여겨져 신에게 바치는 단골 제물이기도 했다.

◆맹목적으로 앞만 보고 따르는 습성
양은 온순하고 여린 동물이긴 하지만 고집이 세고 융통성 없는 특성도 지니고 있다.
더울 때는 다른 양의 그늘 밑에서 더위를 피하려고 꼭 붙어있고, 추울 때는 그 반대로 따로 떨어져 지낸다.

또 무리가 움직이는 대로 무조건 따라가는데 그럴 때는 옆은 물론 앞도 안 봐서 웅덩이가 있어도 피할 줄 모른다. 하지만 목자의 지시를 분별하는 잘 훈련된 양을 리더로 앞세우면 수만 마리의 양떼도 쉽게 다스릴 수 있다. 그럼에도 제 멋대로 대열을 이탈한 양은 무조건 제 고집만 믿고 앞만 보고 가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반면 양에게 소금이나 먹이를 주거나 위험에서 구해 주면 그것을 기억하고 몸으로 신뢰를 표현한다. 또 성질이 유순해 양털을 깎을 때 온 몸을 내맡기고 혹시 상처가 나더라도 묵묵히 참는다.

◆속 썩이는 염소 같이 키우는 이유
흥미로운 것은 순한 양만으로는 목축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목자는 자신의 뒤를 따르는 양과 달리 목자를 앞질러 제멋대로 다니는 염소를 같이 키우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양을 지키기 위해서다. 양 세 마리당 염소 한 마리를 같이 키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첫째는 초장을 오랜 기간 유지하기 위해 염소를 같이 키운다. 염소는 다 자란 풀의 잎사귀만 살살 뜯어 먹는 반면, 양은 어린잎과 다 자란 잎을 구분하지 않고 뜯어 먹는다. 이런 특성 때문에 양들만 있으면 금방 풀이 없어진다. 그러나 염소를 같이 키우면 양들이 염소의 특성을 묵묵히 따라해 초장을 오랜 기간 유지할 수 있다.

둘째로는 광야의 험한 길과 높은 바위를 지날 때 염소의 역할이 필요해서다. 양은 두려움이 많아 험한 비탈길을 가려고 하지 않는다. 이 때 돌격대 역할을 해주는 염소의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염소가 앞서 가면 양들이 묵묵히 그 뒤를 따르기 때문이다.

목자는 염소가 앞서가는 것은 용인하지만 목자의 시야에서 벗어날 정도가 되면 물맷돌로 염소에게 주의를 준다. 목자의 물맷돌을 맞고 돌아오는 염소도 있지만 목에 털을 세우고 목자를 뿔로 받아버리는 염소도 있다. 또한 목자를 떠나 제멋대로 다니는 염소의 속성으로 인해 광야에서 발견되는 동물의 뼈는 양의 뼈보다 염소의 뼈가 압도적으로 많다. 혼자 다니다가 낭떠러지나 골짜기가 많은 유대 광야에서 떨어져 죽은 것이다.

◆기독교 성경 속 양과 목자
성경에 가장 많이 기록된 동물이 양이다. 양은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대표적인 제물이자 재산이었다. 양의 가죽과 털은 성막을 짓는 천으로도 활용됐다. 양은 주로 제사 때나 귀빈을 접대할 때만 잡았다. 이밖에도 수양의 뿔은 나팔이나 기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됐다.

구약시대 하나님 앞에 바친 많은 제물 중에 대표될 만한 것이 흠 없고 순전한 일년 된 양이었다. 특별히 양은 순종과 인내, 온유한 성품을 갖고 있어 세상 죄를 대속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요한복음 1장 29절)으로 예수가 묘사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나오기 전날 밤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引枋)에 바르고 그 안에서 양고기를 불에 구워 먹었다. 성경학자들은 이 때 먹은 양의 피와 고기는 인류를 위해 희생 제물이 된 예수의 몸이자 예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으로 풀이한다.

성경에서는 양을 치는 목자에 관해 백번 넘게 언급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삭, 모세, 다윗, 아모스 등 많은 선지자가 실제 목자였다. 목자 중에는 리브가와 이드로의 딸 등 여자 목자도 있었다.

목자는 아침에 양에게 풀과 물을 먹인 후 한낮에는 보통 그늘지고 시원한 곳에 몇 시간 동안 누워서 쉰다. 저녁엔 우리로 돌아와 열병에 걸렸거나 상처를 입은 양들을 돌본다. 또한 목자는 양들을 맹수로부터 보호하려고 지팡이와 막대기를 지니고 다닌다.

이처럼 목자는 양들의 공급자요, 인도자요, 보호자다. 반면 양은 사자나 이리 등 맹수의 공격을 방어할 뿔이나 날카로운 발톱, 이빨과 같은 무기가 전혀 없다. 따라서 맹수의 공격 앞에서 양의 목숨은 오직 목자에게 달려 있다. 양을 지키는 목자가 선한 목자인지 삯꾼 목자인지는 이처럼 맹수가 양을 삼키기 위해 우리에 침입했을 때 비로소 분별된다.

예수는 성경에 기록된 대표적인 선한 목자다. 그러나 시대마다 선한 목자를 가장하고 오직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삯꾼 목자들이 가득했다. 두 목자의 음성이 동시에 들린다면 양이 살 수 있는 길은 참 목자의 음성을 분별해 좇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쿼바디스’에서 보듯 자신이 속한 교회 목자라면 무조건 옹호하는 무분별한 양(신앙인)이 오늘날 한국교회 부패의 주원인은 아닌지 고민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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