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4명의 유태인들이 사망한 파리의 유태인 전용 식품점 밖에서 프랑스 유태인 학생연합이 10일 시위를 하는 가운데 한 촛불에 “나의 이름이 아닌 한 무슬림으로부터”라고 쓰여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이슬람권 지도자들 “테러야말로 이슬람 정신에 위배돼”
무슬림 청년, 유태인 상점 인질극서 다수 시민 구해내
올랑드 대통령 “광신도와 이슬람은 구분돼야” 화합 강조

[천지일보=정현경 기자] 지난 7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한복판에서 발생한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에 대해 무슬림들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이번 테러가 이슬람교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며 ‘야만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번 테러는 백주 대낮에 유럽의 심장격인 파리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해 서방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그간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만평을 실어 테러 위협을 받아왔던 샤를리 엡도였지만 이번 사건은 단지 이 잡지사에 대한 테러라기보다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유럽사회 전체에 가한 경고성 위협으로 여겨지고 있다.

AFP 통신은 지난 40년 동안 프랑스에서 발생한 테러 중 가장 피해가 큰 사건이라고 전하며, 범인들이 총을 쏘는 중간 중간에 “예언자의 복수를 해냈다” “알라 후 아크바르(알라는 위대하다)” 등을 소리쳐 외쳤다고 현장 목격자들의 증언을 전했다. 이 언론사가 지난 2011년과 2012년에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은 데 대한 보복인 것이다.

테러 소식에 세계 각국은 일제히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미국과 유럽은 물론 아랍권에서도 비난이 이어졌다. 이란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 모든 테러는 이슬람 교리에 어긋난다고 비판했고, 이집트 최고 종교기관도 이번 테러는 범죄에 해당한다고 못 박았다. 아랍연맹 22개 국가도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이슬람 지도자들도 테러범들의 행위는 야만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파리 북부 외곽에 위치한 센 생드니 드랑시 사원의 하센 샬구미 이맘(최고 지도자)은 BFM TV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의 만행은 이슬람과는 아무 상관없는 야만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는 “피에 의한 복수는 만행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미국 남가주 무슬림들도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LA무슬림아메리칸리더스커뮤니티,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 오렌지카운티이슬람센터 등은 “폭력은 절대 정의가 될 수 없다”며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를 비난했다.

이들은 “신의 뜻에 따라 이슬람의 이름으로 한다는 살인은 그 어떤 풍자 만화보다 더 모욕적” “살인은 절대 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형제고, 자매” “무함마드 선지자는 폭력이 아닌, 평화와 축복을 위해 보내졌다” “선지자는 그를 향한 모욕을 모두 견뎌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행하는 테러야말로 그를 가장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 등 이번 테러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호주의 이슬람 지도자들도 한목소리로 테러를 규탄했다.

쿠란다 세이트 빅토리아주 이슬람협회 대변인은 9일 “무슬림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경멸적 방식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 모욕감을 느끼지만 그렇다고 사람을 죽이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세이트 대변인은 이슬람교에서 무함마드는 완벽한 존재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공공영역에서 경멸적 방식으로 언급되면 감정적 자극을 받게 된다면서 “그러나 설령 그들이 잡지 편집장에 의해 모욕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에게 총격을 가하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케이사르 트래드 호주이슬람친선협회 대변인도 “이번 학살은 우리가 배우고 자란 이슬람의 가르침과 배치되는 것”이라며 “우리는 어떤 형태로도 이런 폭력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트래드 대변인은 이어 “우리는 (문제가 된) 풍자만화에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가 믿는 종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편 9일 샤를리 엡도에 총격을 가하고 달아난 두 명의 테러범들이 파리의 유태인 전용 식품점 ‘하이퍼 코셔’에서 인질극을 벌여 4명의 유태인 인질이 사망했다. 이날 이 식품점에서 일하는 무슬림 청년 라싸나 바실리(24)는 고객들을 지하 냉장실로 인도해 테러범들로부터 안전하게 구해내 화제가 됐다.

바실리는 BFMTV와의 인터뷰에서 “손님들이 지하로 다 내려왔을 때 냉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게 했다”며 이후 “불을 끄고 냉장실의 작동도 정지시켰다”고 전했다. 또 “문을 닫은 후 그들에게 나는 나갈 테니 여기서 조용히 있으라”고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그는 안전하게 가게를 탈출한 뒤 경찰에게 현재 가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하며 냉장실 안의 고객들을 살려냈다.

바실리가 몇 명의 고객을 구해냈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어림잡아 약 15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면서 각종 매체와 SNS에서는 여러 격려와 찬사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올랑드 대통령은 테러범 진압작전 직후 광신도와 이슬람은 구분돼야 한다며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 테러 규탄에 한목소리 내는 유대교와 이슬람교.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희생된 17명을 위해 11일(현지시각) 파리 소재 유대교회당 그랑 시나고그에서 추모식이 열린 가운데 이마드 협회 회장이자 테러 공격으로 숨진 프랑스 군인 이마드 이브 자이텐의 엄마인 라티파(오른쪽) 등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출처: 뉴시스)

◆탈레반도 비판하는 탈레반 테러

이슬람 극단주의에 대한 무슬림의 비판은 이전에도 있어왔다.

나이지리아 북부지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무슬림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무함마드 사누시 카노주(州) ‘이슬람 왕’은 지난해 11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저항할 것을 촉구했다가 보코하람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
지난해 초까지 나이지리아 중앙은행 총재로 있으면서 굿럭 조너선 정부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사누시 왕은 한 기도모임에서 “보코하람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들은 우리 소년들을 학살하고 우리 소녀들을 납치해 노예로 삼고 있다”면서 “목숨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여름,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세이크 하산 유세프의 아들 모삽 하산 유세프(36)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때문에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2010년 하마스를 고발하는 ‘하마스의 아들’을 출간한 그는 “하마스는 이스라엘과 미국뿐 아니라 팔레스타인, 심지어 자신들의 생명을 잃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념을 위해 죽는 것을 일종의 예배의식으로 여긴다”면서 “하마스는 공존이나 협상 없이 점령과 정복만을 추구한다. 이런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붕괴시키고 나아가 모든 문명의 폐허 위에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는 최종 목적을 실현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는 ‘무고한 사람들이 피를 흘리지 않고는 이슬람 국가를 건설할 수 없다’는 이념을 5세 아이들에게도 주입시키고 있다”며 “현재 가자지구의 아이들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그는 자신도 그랬지만 이 이념에 반기를 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유세프는 5세부터 하마스 무장대원 교육을 받으며 자라다 하마스의 극단주의에 환멸을 갖게 됐고, 1999년 영국 선교사를 만나 기독교 교리를 접한 뒤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감명 받아 2005년 비밀리에 세례를 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하마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 등 고초를 겪다가 2007년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

지난해 12월 파키스탄 탈레반들이 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교사와 학생들을 상대로 총기를 난사해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테러에 대해서도 이란 정부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조차도 이들을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전 세계적인 비난이 쏟아진 가운데 아프간 탈레반조차도 “아이들을 상대로 한 이 같은 무차별적인 공격은 이슬람 신앙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아프간 탈레반의 대변인은 “무고한 사람들과 아이들과 여성들을 의도적으로 살해하는 것은, 이슬람교의 근본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이란 정부 역시 “이번 공격은 이슬람의 가르침과 정면 대립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이는 완전히 비이슬람적이고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무고한 이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테러리즘과 극단주의는, 어떤 형태와 목적이라 할지라도 정죄받아야 한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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