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타임리’하게 잘 나온 언급이다. 경제 골든타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은 시의적절하고 당연하다. 작금 정부의 정책이 우리 경제가 처해있는 국내외적 어려움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백 마디 미사여구보다 정직한 고백이 울림이 더 있다. 경제살리기가 안 되면 민심은 이반된다. 박 대통령이 29일 국회를 찾아 시정연설을 하고 경제혁신과 재도약을 위한 여야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진작 그랬어야 하고 늘 그랬어야 한다. 예산안이나 법안 통과가 시급해서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생산한 정치적 결단의 뿌리요 뼈대인 국민에 대해 위정자는 늘 진심으로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주례 라디오 연설 등을 통해 낮게 엎드린 자세로 펼친 대국민 설득이 주효했기 때문이기도 하지 않은가. 정치인들이 실제로 경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적확하게 알기는 아는지, 레이건처럼 친절하고 따뜻하게 국민을 상대로 설명해줄 마음 자세는 돼 있는지 궁금하다.

구호만 요란해서는 안 되고 골든타임을 넘겨서도 안 된다. ‘창조경제’ ‘창조경제’ 운운했지만 국민 피부에 와 닿는 가시적인 열매가 눈에 띄지 않는다. ‘초이노믹스’는 벌써부터 약발이 듣지 않는다.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내수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젊은 부부들은 호주머니 사정을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다. 경제개혁법안도 재벌 퍼주기 또는 세월호법 우회용이라는 비판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절대 덮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4월 16일 이후 우리 경제가 끝 모를 저점을 향해 계속 곤두박칠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경제회복은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청와대가 여당을 존중하지 않고 누르려고만 해서는 안 되며, 야당도 반대를 위한 반대에 발목이 잡혀서는 안 된다. 모두 좀 솔직해지자. 가슴에 손을 얹고.

한때 국민의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든 박 대통령의 연초 ‘통일 대박론’도 마찬가지다. 말은 맞지만 왠지 뜬금없다는 느낌도 있었다. 대통령 연설 이후 당국자들의 언행을 보더라도 액션플랜에서 아귀가 맞지 않는 점은 있었다. 통일을 이루는 대통령은 위대한 대통령이 되겠지만, 어젠다를 너무 크고 멀리 잡은 것은 아닐까. 과연 용어 선택은 잘 된 것일까. 그냥 ‘남북 경협 대박론’ 정도면 어땠을까. 북한만 경제가 어려운 게 아니다. 우리도 살기 어려우니 남북이 민족동질성의 바탕 위에서 서로 협력해 민생을 살려나가야 할 텐데. 시일을 두고 대화하며 신뢰를 쌓아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통일의 길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한류가 전 세계에 퍼져나가듯 우리 문화가 북한에 들어가고 우리 전자제품이라도 북한주민들의 생활에 친숙해지면 변화의 바람이 불지 않을까 말이다. 상호 배려의 정신 위에서 협력해 나가야 하는 것이지 일방적이거나 시혜적인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 될 텐데.

안타깝게도 대북전단 문제가 터져 나왔는데 궁금하기만 하다. 법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검토결과가 맞는가. 북한의 최고통치자를 거론하며 자극해 준전시상태로 유도하는 것은 옳은가. 대화테이블에서 꺼낼 협상카드라서 제지하지 않는 것인가. 물론 고위급 회담이 만능키는 아니다. 2차 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고 해서 남북 간에 얽히고설킨 문제가 하루아침에 다 풀릴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왜 돌연 당 서열 2, 3, 4위의 고위급인사를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내려 보냈는가. 유엔에서 제기된 북한 인권문제 때문인가.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속도조절용인가, 아니면 내부용인가. 정확한 속내를 알 수는 없다. “핵을 내려놓으라”는 거듭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제 갈 길로 가기만 하는 북한은 소형핵탄두 기술도 상당 수준에 이른 것 같다. 다만 우리는 우리대로 의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통일외교는 국제사회에 떳떳해야 한다. 국가백년대계를 감안한 지혜와 철학이 담겨야 하고 어리석은 기싸움 때문에 시기를 뒤로 미뤄서도 안 된다.

개헌도 그렇다. 청와대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일인가. 국회의원 재적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개헌 발의가 가능하지 않은가. 군사정권에서 하향식으로 만들어진 제왕적 권력구조 아닌가. 여의도 쪽의 논의는 지극히 자연스럽다. 시간이 많지도 않다. 여건상 개헌의 골든타임은 내년 상반기까지라고 보면 된다. 다만 김무성 대표가 이원집정부제까지 못 박아 거론한 베이징 발언은 부적절했다. 대통령제냐, 내각책임제냐, 이원집정부제냐, 혹은 소선거구제냐, 대선거구제냐는 아래로부터의 토론을 거쳐야 한다. 잘 나가던 김 대표였지만 너무 나가 버렸다. 그렇다고 개헌논의자체까지 폄하돼서야. 논의가 친이 친박 다툼의 소산이 되거나, 만에 하나 정치공학적인 득실을 계산한 치고 빠지기식 꼼수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후대들을 위해서도 개헌은 해야 하고 권력은 분산돼야 한다. 경직된 권력구조도 이제는 국민의 뜻을 그 때 그 때 반영할 수 있도록 좀 더 유연한 시스템으로 현대화해야 한다. 그러나 결행 시점을 잘 골라야 한다. 뉴욕타임즈의 칼럼니스트 제임즈 레스턴이 남긴 글이라도 되새겨봐야 하겠다. “사랑과 정치는 타이밍”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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