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供養)

김후란(1934~ )

숲 속을 걸었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에
쓰러져 누운 고목(枯木)이 있었다. 

흰 개미들이 모여들었다
부서져 나가는

아, 이렇게
누군가를 위해
나를 바친다면
나를 버려 다시 살아난다면

 

[시평]
숲길을 걷다가 울창한 나무들 사이 죽어 넘어진 고사목을 본다. 나무의 몸통은 비록 오래되어 부서져 있었지만, 그 죽어 넘어진 나무 몸통은 온통 개미들이 들락거리며 살아가는 집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비록 육신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다른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니, 이는 진정 죽은 것이 아니리라. 어쩌면 이는 다시 살아나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죽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비록 육신은 죽어 없어졌지만, 그 정신이 남아 후인들의 마음에 있다면, 몸은 죽었지만, 이는 진정 다시 살아나는 것 아니겠는가. 나무는 죽어 개미의 집이 되어 다시 살고 있지만, 사람은 죽어 다른 사람의 무엇이 되는 길, 그래서 다시 사는 길은 그가 남긴 정신에 의해서 이리라. 어쩌면 진정한 정신의 유산자, 그들은 자신을 버려 다시 살아난 그 사람들 아니겠는가. 이들이 바로 진정한 정신의 공양자(供養者)이리라.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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