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판 위의 검은 돌 한 점

류수안

이곳에 와선 산 자와 죽은 자 모두 제 집을 찾네

돌은 침묵 속에서 저를 불멸로 이끌어 줄
집 밖의 한 곳만 바라보네

이따금 흰 별들이 그 위를 스쳐가네

[시평]
모든 게임이 그렇듯이, 이긴 자와 진 자가 그 자리에는 있게 마련이다. 살아남기 위하여 치열하게 벌이는 경쟁 속, 그 경쟁이 바로 삶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우리는 살아간다. 실은 심심풀이로 두는 바둑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치열한 싸움을 한다. 흑과 백의 싸움은 마치 실제의 전쟁을 방불하게도 한다.
바둑판을 바라보면서, 결국 지고 이기는 것은 다름 아닌 몇 채의 집을 더 소유하느냐의 문제로 귀결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몇 채의 집, 이는 다름 아닌 소유에의 또 다른 상징이리라. 소유한 자는 이긴 자이고 소유하지 못한 자는 진 자라는 현실을 바둑판은 여실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바둑판 위의 ‘돌은 침묵 속에서 저를 불멸로 이끌어 줄 집 밖의 한 곳만 바라보는’ 것 아니겠는가. ‘불멸’, 영원히 죽고 싶지 않은, 그래서 영원히 이기고 싶은 인간의 욕망이 ‘검은 돌’ 하나로 살아나는 바둑판은 어쩌면 우리들 욕망의 축소판인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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