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환은행 노조와 금융노조 관계자들이 지난 18일 오전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900명 불법징계’를 철회시켜 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공: 외환은행 노조)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조기통합을 둘러싼 갈등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이 최근 조기통합론을 다시 들고 나온 데다, 외환은행도 900여 명에 달하는 직원 징계에 착수하는 등 조기통합을 반대하는 외환은행 노조에 대한 압박 수위가 높아졌다.

김정태 회장이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지난 18일 직원들과 가진 북한산 둘레길 산행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8월 중순 합병 관련 통합 이사회를 열 계획이었지만 노조 반발 등을 고려해 이를 미뤘는데 벌써 40여일이 지났다”며 “10월 중 하나·외환은행 합병 관련 승인 신청을 금융위원회에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특히 “(외환은행) 노사 합의를 우선시하겠지만 노조가 계속 거부하더라도 우리 일정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외환은행 노조가 반대하더라도 금융당국에 통합 승인 신청을 강행하겠다는 것이다. 지난 2달 넘게 노조와의 협상에 진전이 없자, 김 회장이 노조를 다시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외환은행도 조기통합에 반대하는 노조원에 대해 강경 대응에 나서며 통합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 3일 노조가 개최하려다 무산된 임시 조합원 총회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당시 총회에 참석하려고 근무지를 이탈했던 직원 898명을 인사위원회에 회부, 19일부터 이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앞서 총회 참석을 위해 근무지를 이탈하면 징계하겠다고 사전 예고했고, 결국 당시 총회는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된 바 있다.

노조 반발은 여전히 거세다. 19일 ‘김 회장의 발언에 대한 입장자료’를 내고 “김 회장의 ‘10월 중 승인 신청’ 발언은 금융당국을 무시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노조가 대화에 나서지 않는다’는 언급에 대해서도 “그동안 대화는 사실상 하나지주와 경영진이 거부했다”며 “비전캠프 등 직원들에게 노조에 대한 적대행위를 강요하는 작업들을 즉각 중단할 것을 수없이 요구했음에도 이를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사측의 대규모 직원 징계 강행에 대해서도 강경하게 대응하고 있다. 17일 임시 대의원회의를 열어 징계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조합원을 위해 ‘희생자 구제를 포함한 투쟁기금’을 조성키로 결의한 데 이어, 18일엔 직원 900여 명에 대한 징계가 불법이라며 청와대와 금융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앞서 지난 15일에는 김한조 외환은행장과 경영진을 부당 노동행위 혐의로 고소했다. 노조는 고소장에서 “조합원 총회는 노동법과 외환은행 단체협약이 보장한 정당하고 적법한 조합활동”이라며 “조합원들의 총회 참석을 방해하고 총회에 참석한 직원을 징계하는 것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을 위반한 부당 노동행위”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직원 징계를 철회하지 않는 한 노사 간 대화도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지난 3일 총회가 무산된 이후 노조 내 분열 조짐이 감지되면서, 징계 당사자인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측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노사 합의가 진척돼야 통합 승인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 간 갈등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방침이다. 특히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2.17 합의서’는 정부가 이행을 보증할 의무가 없다고 보고 있다. 실제 노동부는 최근 금융위가 의뢰한 합의서에 대해 ‘노사’ 간 합의일 뿐 정부는 협상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나금융지주는 지난 2012년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5년간 외환은행의 독립경영을 보장한다’는 합의를 맺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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