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오 마이 슈퍼맨’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현대 사회 ‘가족 붕괴’ 현상 속 아버지 모습 투영
내 아버지와 가족구성원으로서 나 돌아보게 해

[천지일보=손예은 기자] “아이고 허리야. 거기 파스 좀 뿌려봐.”

우리가 기억하는 영화 속 슈퍼맨은 깊은 눈에 오똑한 콧날을 가진 근육 탄탄한 청년. 그러나 여기 환갑의 슈퍼맨(배상돈)이 있다.

그에게 첫째 아들 태식(정충구)이 찾아왔다. 가게를 리모델링한다며 500만 원을 달랜다. 막내딸 예진(방미라)이 들어와 말한다. “아빠, 나 결혼식 비용 좀 보태줘.” 결혼한다는 얘기도 못 들었는데.

연극 ‘오 마이 슈퍼맨’은 사회 문제의 원인으로 꼽히는 ‘가족 붕괴’ 현상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슈퍼맨이라는 소재를 더해 흥미를 끈다.

▲ 연극 ‘오 마이 슈퍼맨’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홍석진 작가와 김정근 연출은 비현실적 인물 슈퍼맨에 현실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 자식은 부모의 ‘사랑의 결실’이다.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자식을 버린 어미라 할지라도 평생 아이를 가슴에 묻고 산다. 천륜은 끊을 수 없다.

슈퍼맨도 다르지 않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을리 없다. 그러나 슈퍼맨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됐을 때, 자식들마저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 “사실 우리가 아버지에 대해 뭘 알 수 있을까? 아버지는 우리가 일어나면 자고 있었고 우리가 들어오면 나가고 없었는데”라며.

자식들을 먹여 살리려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일과 싸우는 아버지들. 유일하게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곳이 집이건만, 쉬는 것 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자칫 ‘게으르고 가정을 돌보지 않는 아버지’가 되기 때문.

대화하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누군들 가족과 화목하게 지내고 싶지 않을까. 그저 세상에 치여 몸을 움직이기가 힘든 것이다.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새벽부터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하고, 만원버스·지하철에 몸을 싣고 옴짝달싹 못한 채 답답한 공기를 마시며 출근한다. 직장에 도착하니 오늘도 일이 산더미. 퇴근까지 상사의 눈치를 본다. 퇴근길, 또 다시 만원버스·지하철에 올라 집에 도착하면 ‘아, 드디어 쉬는구나’ 한다. 그저 드러눕고만 싶다.

▲ 연극 ‘오 마이 슈퍼맨’ 공연 장면. ⓒ천지일보(뉴스천지)

그렇게 몇 십여 년을 살아 자식들을 먹여 살린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돌아오는 말은 “아빠가 뭘 알아”나 “아빠가 해준 게 뭐야” 혹은 “나한테 관심이나 가져봤어?”

처음엔 분하다. 내가 뼈 빠지게 고생해서 먹여 살렸는데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곤 회의감이 든다. 내가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 한 고생은 뭔가. 그러나 한편으론 생각한다. 먹여 살리는 것으로 가장의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 게 잘못된 것이었나.

세상을 구하느라, 생명을 구하느라 가족을 돌보지 못한 슈퍼맨. “우리 가족을 위해 그랬다”고 말하지만 “어쩌면 핑계였을지 모르겠다”는 그는 이런 아버지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가족에 변화를 가져오는 인물 황지선 기자(김민경, 박미선)와 막내딸 예진의 남자친구 윤명호(전정로, 홍웅선)는 서로 다른 시야를 갖고 슈퍼맨을 바라본다.

황지선은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라고 얘기하고, 윤명호는 어릴 적 자신을 구해준 슈퍼맨을 영웅으로 기억하며 토론의 찬성·반대처럼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한다.

슈퍼맨의 가족들은 한 사건으로 아버지를,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둘째 아들 규현(윤일식)은 말한다. 아버지는 이기적이라고, 그리고 우리 모두 이기적이라고.

후반으로 진입할수록 몰입되는 과정에서 ‘나의 아버지’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아쉬운 점은 큰 무대가 오히려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것. 소소한 가족 이야기, 소소한 무대에서 관객에게 좀 더 다가갔으면 한다. 오는 28일까지. 성수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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