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여름철 서해에 위치한 해수욕장에 썰물 때가 되면, 드러난 갯벌 위를 소금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을 본다.

작게 뚫린 ‘8’ 모양의 구멍을 발견하면, 펄을 살짝 긁어낸 후 구멍에 소금을 넣고, 기다리면 대맛이 불쑥 솟아오른다. 물이 들어온 줄 알고, 펄 속에 웅크리던 ‘대맛조개’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민들은 ‘대맛조개’가 착각을 일으킬 시간도 주지 않는다. 가늘고 긴 꼬챙이를 구멍에 쑤셔놓으면, 바로 매달려 올라오는 방법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대맛조개는 일 년에 한 번 알을 낳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우리나라 갯벌에 사는 다른 조개와 비슷하게 수온이 15℃이상인 5월에서 7월 사이 주로 발생한다. 그 중에 가장 왕성한 시기는 6월 하순으로, 물속에 뿌려진 알은 수정돼 15시간 후면 물속을 헤엄치는 플랑크톤이 된다. 플랑크톤 생활에도 먹이를 잡아먹으며, 약 24일 정도면 조개모양을 나타내면서 펄 속으로 들어간다. 초기에는 모양이 여느 조개와 비슷하지만 태어난 지 40일 정도가 되면 대맛조개 모양을 갖추게 된다. 태어난 지 2년 정도가 되면 성체가 돼 알을 낳는다.

‘대맛조개’의 패각(貝殼)이 매우 얇아 적은 충격에도 쉽게 부서진다. 대맛조개는 구멍을 파면 40cm 이상 파 내려가며, 한군데서 살기도 하지만 가끔 펄 밖으로 나와 밀물이나 썰물과 함께 이동하기도 한다. 모양에 비해 펄을 파는 실력도 대단해 동죽이나 바지락보다 빠른 잠입 실력을 가지고 있다.

대맛조개는 원기둥 형태로 길이는 12cm 정도지만 높이와 너비는 각각 1.6cm와 1.2cm 안팎으로 짙은 황갈색을 띠며 대나무처럼 생겨서 죽합(竹蛤) 또는 죽정(竹蟶)이라고도 한다. 한편 창자처럼 길다 하여 ‘정장(蟶腸)’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이 대맛이 얼마나 맛있으면 중국의 사신이 조선에 오자마자 대맛 조개를 요구했을 정도다.조선후기 역사가, 실학자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練藜室記述)’ 별집 제5권 사대전고(事大典故)에 보면 “선조 때 중국 사신의 가정(家丁·사병과 유사한 친위병) 한 사람이 정장(蟶腸·맛과에 속하는 조개)을 요구하였는데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였고, 그는 구해주지 않는다고 성이 나서 임금이 관소(館所)에 거동하였을 때 어가(御駕) 앞에서 호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지금도 대맛 조개를 이용한 중국 음식 중에 ‘라차오 청즈(辣炒蟶子·맵게 볶은 맛살 조개)’와 ‘찌아오요우 청즈(澆油蟶蟶) 자를 쓴다. 맛살조개는, 옛부터 식용했으며 말리기도 하고 소금에 절이기도 한다. 대맛의 속살은 보드라운 맛이 일품이어서 널리 식용하는데 이를 맛살이라고 부르며 낚싯밥으로 쓰기도 한다.

1433년(세종 15) 우리나라 약재로 병을 치료한 경험에 기초해 편찬한 약물학 책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에서는 “‘蟶(정)’ 항목 하에 향명을 ‘麻致(마치·맛)’으로 적고, 맛은 달고 성(性)은 온(溫)하고 독이 없으며 몸이 허약함을 보하고, 냉리(冷痢), 부인의 산후 허약, 가슴 속의 사열(邪熱)·번민의 기(氣)를 다스리며, 바다의 진흙 속에 살며 길이가 2·3치이고 크기가 손가락 같고 양 머리가 열려 있다고 했다”라고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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