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조선(성종 16) 1485년에 서거정(徐居正, 1420~88) 등이 신라 초부터 고려 말까지의 역사를 편찬한 사서 ‘동국통람(東國通覽)’ 고려 충렬왕 때 오윤부(伍允孚)가 왕에게 건의해 춘추분에서 가장 가까운 무일(戊日)을 사일(社日)로 정했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춘추분에서 멀리 있는 무일이 사일이었다.

조선 후기의 학자 유암(流巖)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지은 농서 ‘산림경제(山林經濟)’ 신은지(新隱志)에 ‘춘사일(春社日)에는 오곡의 귀신에게 제사하여 풍년들기를 빈다’라고 돼 있다. 조선시대 명신이며 농학자인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쓴 ‘사시찬요(四時纂要)’에는 ‘춘사일(春社日) 춘분을 전후하여 가장 가까운 무일에 비가 오면 연사는 풍년들지만 과일이 적게 나고, 추사일(秋社日) 추분을 전후하여 가장 가까운 무일에 비가 오면 다음 해에 풍년이 든다’라고 적고 있다.

입춘 후와 입추 후 제5 무일을 춘사일, 추사일이라고 한다. 춘사일은 3월 17~26일에, 추사일은 9월 18일~27일에 있는데, 춘사는 부지런히 일하자는 뜻에서, 추사는 풍성한 수확을 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에서 지신(地神)과 농신(農神)에게 제사(祭祀)를 지냈다. 제비는 춘사에 날아와 봄을 알리고 추사에 떠나며 가을을 알린다고 한다. 이날이 되면 여자들은 바느질을 멈추고 남자들은 농사일을 멈추고 동네 정자나무 밑에 제수를 차려 놓고 지신과 농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때 해 먹는 시절음식이 있으니 그게 바로 사반(社飯)이다.

사반에 대해 조선 24대 헌종(憲宗) 때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입춘과 입추 후 닷새째 되는 날인 토지의 신께 제사를 지내는 사일에 고기와 채소를 밥에 덮어서 먹는데 이것을 사반이라고 했다’고 기록돼 있다.

조선 중기의 유학자 이이(李珥, 1536~84)가 쓴 ‘성학집요(聖學輯要)’에 ‘동래여씨(東萊呂氏)’는 “명절 음식으로 입춘에는 춘병, 정월 대보름엔 원자(圓子)와 염시탕을 올린다. 2월 사일 곧 입춘과 입추 후 다섯 번째의 술일에는 사반을, 한식에는 조당과 냉죽(冷粥)과 증채를, 단오에는 단종, 칠석에는 과식(果食)을, 중양절에는 유국고를 올린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조시대(仁祖時代)의 문신 계곡 장유(張維, 1587∼1638)는 ‘김대비만장(金大妃挽章)’에 “인간 세상에 돌아와 사반을 드시고, 지하에서 다시 구슬옷을 입으시리”라고 썼다. 성종 14년(1483 계묘, 명 성화(成化) 19년) 6월 12일 계유 정희왕후의 애책문과 묘지문(墓誌文)에도 사반이 나온다. 이 내용의 일부분을 보면 “아아, 슬프다! 용곤(龍袞)이 비통하게도 최의(縗衣)로 변(變)하였으니, 말명(末命)을 따르며 울부짖도다. 조관(朝官)들은 슬퍼하여 벽용(擗踊)하고 사반을 생각하며 놀라 부르짖네”라고 했다. 이 사반이 얼마나 맛있었으면 장유(張維)가 대비(大妃)의 만장(挽章)에 썼으며, 정희왕후의 애책문에 썼을까 싶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기록처럼 채소와 고기를 밥에 덮어서 먹는다는 표현으로 보아 사반은 오늘날의 ‘고기덮밥’과 흡사하다 할 것이다. 여러 문헌에 등장한 사반에 대해 사일에 여러 고기를 섞어 조리해서 밥에 넣어 먹는 것인데, 귀인(貴人)과 척신이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일과 사반의 풍습은 중국에서 유래된 것 같다. 청나라 때 유명한 사학자이자 문학자인 필원(畢沅, 1730~1797)이 쓴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에 “11세기 북송 철종 때 수렴청정을 하던 태황태후가 병이 들어 신하들이 병문안을 왔는데 그날이 마침 사일이어서 사반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

13세기 남송의 수도인 지금의 항저우 풍경을 묘사한 송(宋) 나라 때 문학가(文学家) 주밀(周密)의 저서 ‘무림구사(武林舊事)’라는 책에도 사일에 고기덮밥을 나누어 먹는다는 내용이 있다. 중국은 사반을 거판(盖飯: 덮밥)이라 하고, 일본은 돈부리(どんぶり)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반을 순수한 우리말 ‘덮밥’으로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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