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식생활문화연구원 김영복 원장

겨울철 장독에 살 어름이 언 동치미 국물은 이냉치냉(以冷治冷)의 대표적인 음식이며, 냉면국물에 요긴하게 쓰인다. 이 동치미를 1849년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11월조에 ‘무뿌리가 비교적 작은 것으로 동침(冬沈)’이라 했다. 이렇듯 동치미는 한자어 ‘동침’을 일반인들이 ‘동침이’ ‘동치미’로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 고문헌에서는 ‘동침저(凍沈菹)’로 표기돼 있다. 그 의미는 ‘겨울에 물에 담가서 먹는 김치’라는 뜻과 ‘겨울에 국물이 언 김치’라는 동시의 뜻을 가진다.

조선시대 ‘동치미’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문헌으로는 1766년에 유중림(柳重臨)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조선 후기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 1759~1824)가 쓴 ‘규합총서(閨閤叢書)’, 1827년(순조 27년)에 서유구(徐有榘, 1764~1845)가 엮어낸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 등장한다.

그 중에서 규합총서에 나오는 동치미 담는 법을 소개하면, “잘고 모양 예쁜 무를 꼬리채 정하게 깎아 간을 맞추어 절인다. 하루 지나 다 절거든 정하게 씻어 독을 묻고 넣는다. 어린 외를 가지째 재에 묻는 법으로 두면 갓 딴 듯하니 무를 절일 때 같이 절였다가 넣고 좋은 배와 유자를 왼쪽 방향으로 껍질을 벗겨 썰지 말고 넣고 파 흰 뿌리 부분을 한 치 길이씩 베어 위를 반씩 잘라 넷으로 쪼갠 것과 생강을 넓고 얇게 저민 것과 고추씨 없이 반듯하게 썬 것을 위에 많이 넣는다. 좋은 물에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고운 채에 받쳐 가득히 붓고 두껍게 봉해 둔다. 겨울에 익은 후 먹을 때 배와 유자는 썰고, 그 굿에 굴을 타고 석류에 잣을 흩어 쓰면 맑고 산뜻하며 그 맛이 매우 좋고 또 좋은 꿩고기를 백숙으로 고아서 그 국의 기름을 없애고 얼음을 같이 채워 동치미국에 붓고 궝고기 살을 섞어 쓰면 그 이름이 이른바 ‘생치(生雉)김치’며, 동치미국에 가는 국수를 넣고 무, 오이, 배, 유자를 같이 저며 얹고 돼지고기와 계란 부친 것을 채쳐서 흩고 후추와 잣을 뿌리면 이른바 냉면이다”라고 적고 있다.

방신영(1890~1977)이 쓴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에 ‘동침이 별법’이라고 해 비슷한 조리법이 소개돼 있다. 조선 숙종(1712년) 때 김창업이 청나라를 다녀온 사행(使行)일기인 ‘연행일기(燕行日記)’에 보면 이미 조선의 동치미가 중국에 전래돼 “우리나라에서 귀화한 노파가 그곳에서 김치를 담가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가 담근 동치미의 맛이 서울의 것과 똑같다”라고 나와 있다.

이 할머니에 관해서는 동관역(東關驛)에서 머무른 사행들의 기록에 빠짐없이 등장한다. 사행들 사이에 김치할머니(沈菜老婆)로 불리는 이 할머니는 병자호란 때 잡혀와 이곳에 살았던 조선 피로인(被虜人) 2세다.

조선 순조(1803년) 때의 문신 장계(長溪) 서장보가 동지사 서장관이 되어 정사(正使) 민태혁을 따라 연경(燕京)에 갔을 때 수행원의 한 사람이던 자(字)가 성서(聖瑞), 호(號)가 동화(東華)라는 서장보의 친구가 쓴 사행 기록 ‘계산기정(薊山紀程)’은 중국 연경에 다녀오면서 노정에서의 견문과 감회를 적은 445수의 한시를 일기체로 편찬 한 것이다.

이 책을 보면 “침채(沈菜)는 맛이 매우 짜기 때문에 물에 담가 두었다가 소금기가 빠진 뒤에 가늘게 썰어서 먹는다. 어차과(魚醝瓜)는 대릉하(大凌河)에서 나는 것인데, 젓갈을 소금에 오래 절여 두면 젓국이 기름처럼 맑아진다. 그 젓국으로 작은 오이를 담그는데, 색깔은 갓 딴 순무처럼 시퍼렇다. 그것을 혹 노하고(鹵蝦苽)라고도 한다. 풍윤현(豐潤縣), 영원현(寧遠縣)에 동치미가 있는데 우리나라의 것과 맛이 같으나, 풍윤현 것이 더욱 좋다. 개침채(芥沈菜)ㆍ송침채(菘沈菜)는 가는 곳마다 있는데 맛이 나쁘면서 짜고, 또한 갖가지 장아찌[醬瓜]가 있는데 맛이 좋지 못하다. 혹 통관(通官)의 집에는 우리나라의 침채 만드는 법을 모방하여 맛이 꽤 좋다 한다”라며 동치미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호남성 장사(長沙)>남악 형산(衡山)>광서성 계림(桂林)>양삭(陽朔)>용승(龍勝)>삼강(三江)>호남성 봉황고성(鳳凰古城)>장사>악양(岳陽) 등에 ‘중국의 동치미’가 분포돼 있다.

계단식 논으로 유명한 광서성 용승에서 35㎞ 떨어진 금갱홍요제전(金坑紅瑤梯田)에 ‘신무’라는 이름의 초절임은 무에다 식초와 설탕을 넣어 만들지만 한국의 동치미와 다를 바 없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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