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사태 당사자 모두 외부 출신… 모피아-연피아
하나의 조직내 두 의결기구 존재로 갈등 불가피

[천지일보=김일녀 기자] 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불거진 KB금융 내분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경영진의 내부 갈등을 자체적으로 봉합하지 못해 금융당국과 법원까지 끌어들인 데다,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입장 차도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모습이다.

앞서 국민은행은 최근 이사회에서 IBM 메인프레임 전산 시스템을 유닉스 기반의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내용의 안건에 대해 이건호 행장과 정병기 감사위원이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정 감사는 문제 소지가 있다며 이 행장의 승인을 받아 금감원에 검사를 요청하면서 내부 갈등이 외부로 드러나게 됐다. 이렇듯 이 행장이 강수를 둔 것은 사실상 이사회를 통해 은행을 제어하려는 임 회장에 반기를 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이번 사태에 대해 KB금융 측은 은행장과 이사회 간 문제일 뿐, 회장과 은행장의 대립으로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부 임원을 내세워 불쾌한 심기를 역력히 드러내기도 했다. 김재열 KB금융 최고정보책임자(CIO, 전무)는 최근 해명자료를 통해 “유닉스 시스템 결정은 IT 운영의 효율화 차원에서 한 전략적 경영 판단”이라며 “상임감사위원이 은행 경영협의회를 거쳐 은행·카드 이사회에서 결의된 사항에 대해 자의적인 감사권을 남용해 최고 의결기구인 이사회를 무력화시키려 했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번 갈등의 근본원인으로 대부분 낙하산 인사를 꼽았다. 한 민간연구소 자문위원은 “내부 조율을 통해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 힘을 빌려 해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은 낙하산으로 내려온 회장이 조직 내에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며, 행장도 다른 힘에 의해 낙하산으로 내려오다 보니 서로 존중하는 관계가 되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임영록 회장은 모피아(옛 재무부+마피아)로, 금융연구원 출신인 이건호 행장은 이른바 연피아(연구원+마피아)로 불린다. 결국 제도를 고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인사가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의 한 연구원도 “전반적으로 외부에서 추천해 오는 사람은 회사의 사정이나 기업 문화 등이 고려되는 부분이 부족하고, 아무래도 추천자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주회사 체제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금융당국이 지배구조 특례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100% 갖고 있는 완전 자회사의 경우 사외이사나 감사위원회를 따로 두지 않아도 된다는 특례가 있음에도, 감독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아 하나의 조직 내 두 개의 의사결정 기구가 존재하다 보니 충돌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라며 “이는 2중의 감독장치라는 측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가 생길 경우 감독당국이 자회사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스스로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국은 이러한 특례를 허용하고 만약 문제가 생기면 엄중하게 책임을 물으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예 지주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지주사는 하는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는 일이 있어도 책임은 지지 않고 권한만 행사한다”며 “이 때문에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사고 관련 집행을 담당했던 자회사가 징계를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금감원은 이번 특검에서 국민은행 주 전산시스템 교체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자세히 들여다볼 방침이다. 이에 이번 사태의 당사자인 임 회장과 이 행장은 징계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다. 특히 이들 최고경영자는 내달 대규모 제재를 받는 국민은행의 각종 금융사고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어서 적잖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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