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보의 각 부위별 명칭(위)과 대한제국 국새 황제지보(아래). (사진제공: 문화재청)

국왕 정통성 과시 ‘국새’
왕위 계승 시 징표로 전해져
왕 행차 맨앞에서 위엄 과시
사용 따라 국인·어보로 나눠

왕실 권위 상징 ‘어보’
궁중의식 때 제작돼 보관
왕비나 세자·세자빈도 소유

[천지일보=박선혜 기자] 한국전쟁 당시 미군에 의해 미국으로 불법 반출됐던 대한제국의 국새와 어보(9과)가 다가오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 방한 시에 반환된다. 지난 17일 한미 양국이 최종 합의했으며, 현재 인수절차를 진행 중이다. 이번에 60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국새와 어보 등은 대한제국 시기 왕실에서 사용한 도장으로, 매우 귀중한 가치를 지닌다. 국새(國璽)와 어보(御寶)는 ‘왕실 도장’을 지칭하는 같은 말이나, 사용 상황에 따라 구분해 부른다. 인장을 세는 단위는 ‘과(顆)’다.

국가 문서에 사용할 땐 ‘국새’

국새는 국왕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사대·교린의 외교 문서 및 왕명으로 행해지는 국내 문서에 사용됐다. 왕위 계승 시에는 전국(傳國)의 징표로 전수됐다. 또, 왕의 각종 행차 시에는 그 위엄을 과시하기 위해 행렬의 앞에서 봉송되기도 했다.

지금까지 국새는 여러 종류가 있었다. 시대와 용도에 따라 구분됐다. 크게 외교문서(특히 대중국 관계)에 사용되는 국인(國印, 대보로 통칭)과 국내용 어보로 나뉜다. 고종 31년(1894년) 갑오경장 이전까지의 국인은 대부분 중국 역대 왕조의 황제들에 의해 사여(賜與, 나라나 관청에서 금품을 내려 줌)돼 들어왔고, 기타의 어보들은 국내에서 제작돼 사용됐다.

1897년 대한제국이 수립되면서 ‘대한국새’ ‘황제지새’ ‘황제지보’ ‘칙명지보’ ‘제고지보’ ‘시명지보’ ‘대원수보’ ‘원수지보’ 등의 국새를 제작, 사용했다.

대한민국이 건국된 이듬해인 1949년 5월에는 새로운 국새가 마련됐다. 사방 두치(약 6㎝)의 정방형 도장 형태에 한자 전서(篆書)로 ‘대한민국지새(大韓民國之璽)’라 새기고, 내각 사무처에서 관리하도록 규정했다.

1962년에는 국새 규정을 고쳐, 사방 7㎝의 정방형 도장 형태에 한글 전서체로 ‘대한민국’ 넉자를 가로로 새겼고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이 모양의 손잡이를 달았으며, 이를 총무처에서 관리하게 했다. 이것이 1998년 말까지 사용되다가 1999년 1월 26일, 글자를 훈민정음체로 바꾸고 성군(聖君)을 상징하는 봉황을 얹은 국새를 만들었다.

한편 정부는 2011년 10월 4일, 5대 국새를 금합금으로 다시 제작했다. 내부를 비우고 손잡이인 인뉴와 아래 부분 인문을 분리하지 않는 ‘중공일체형’으로 한 번에 주조했다. 강도를 높이고 균열을 막기 위해 희귀 금속인 이리듐을 넣었다.

크기는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10.4㎝로 지금 사용 중인 3대 국새보다 가로와 세로가 0.3㎝씩 커지고, 높이가 0.4㎝ 높아졌으며, 전체 무게는 3.38㎏으로 3대 국새의 2.15㎏ 보다 1.23㎏이 더 무거워졌다. 이것이 현행 대한민국 국새다.

왕실 상징물로 의례에 사용한 ‘어보’

 

임금의 집무용 또는 대외적으로 사용되는 국새와 달리 어보는 각종 행정문서가 아닌 왕실의 혼례나 책봉 등 궁중의식에서 시호ㆍ존호ㆍ휘호를 올릴 때 제작돼 일종의 상징물로 보관해왔다. 왕과 왕비뿐 아니라 세자와 세자빈도 어보를 받았고, 왕과 왕비의 어보는 사후 왕실 사당인 종묘에 안치했다.

어보는 거북이나 용 장식을 비롯해 어보를 넣는 내함인 보통(寶筒), 보통을 넣는 외함인 보록(寶盝), 어보·보통과 보록을 싸는 보자기와 이를 묶는 끈 등 최소 6개 이상의 다양한 유물이 한 묶음으로 이뤄진다. 또한 글자가 새겨져 있는 방형(方形)의 보신(寶身)과 거북이·용 등이 조각된 보뉴(寶鈕)로 구성돼 있다. 대한제국에 들어서면서 보뉴의 거북이가 황제의 상징인 용으로 바꼈다. 보신의 바닥에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이를 보면(寶面)이라 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소장한 어보는 태조의 4대 조상(목조, 도조, 익조, 환조)부터 27대 순종을 비롯해 추존왕(덕종, 원종, 진종, 장조, 문조) 등 34명의 왕과 48명의 왕비와 계비, 세자와 세자빈 까지 316종이다. 이들 중 1441년의 문종비 현덕왕후 어보가 가장 이른 시기에 제작된 어보이며, 1928년에 제작된 순종비 순명효황후 어보가 가장 늦은 시기에 제작됐다.

한편 ‘문정왕후 어보’와 ‘현종 어보’는 문화재청의 수사요청(2013년 5월 23일~7월 9일)에 따라 국토안보수사국이 압수(2013년 9월 27일)했으나, 소장자에 관한 형사적 처벌 여부 검토 등으로 국내 환수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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