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꼭 1년 1개월여 전의 일이다. 박근혜정부가 막 출범한 지난해 3월 4일, 진도 앞바다에서 어선침몰사고가 발생해 어민 7명이 실종됐다. 당시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내정자는 어선침몰사고 현장을 찾아 목포해경으로부터 수습 현황 등을 보고 받는 자리에서 “매번, 사고를 수습하는 데만 급급하기보다는 해상에서 발생하는 각종 사고 사례를 분석해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해양사고 재발방지 대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지난 4월 16일 발생한 진도 여객선 참사는 어선에서 여객선으로 대체됐다는 것뿐이지 진도해상에서 일어난 선박 침몰 사고다. 박근혜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안전을 강조하고 재난관리 중앙부처인 행정안전부의 명칭을 ‘안전행정부’로 바꾸고, 출범 초기에 발생한 진도 어선침몰사고 등을 교훈삼아 각종 사건사고에 대해 철저히 예방조치를 취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이번 참사의 수습과정에서 정확한 승선객수조차 파악이 안 돼 뒤죽박죽인 대책본부의 발표를 보고서 안전을 중요시해온 박근혜정부가 말로만 ‘안전’을 외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박근혜정부뿐만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도 안전대책을 중요시해 일련의 조치를 취해왔다. 그렇지만 예외 없이 사건․사고가 터져 나올 때마다 사고를 당한 가족들과 국민의 원성이 자자했는데, 과거 김영삼정부 때는 ‘사고천국’이라 불릴 정도가 각종 사고가 많았다.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발생한 부산 구포역 사고(1993.3.28.발생)를 비롯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1995.6.29.발생) 등 별의별 사고가 다 터졌는바, 1993년 10월 12일자 한겨레신문의 기사내용을 보면 당시 정부가 사고에 대해 대비책을 소홀히 했고, 안전을 경시했는지 잘 나타나 있다.

“10일 발생한 서해 페리호 침몰참사로 이제 ‘바다’ 차례 아니냐는 항간의 우려 섞인 예측이 불행히도 들어맞고 말았다. 부산구포역 열차 전복사고와 아시아나 항공기 추락 사건을 각각 ‘땅’과 ‘하늘’에 빗대면서 앞으로 해상에서 대형 선박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이번 사고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올 들어 땅과 하늘, 바다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 대형사고는 규모와 의외성에서 유례가 없을 것이다.”(한겨레신문 보도기사에서 발췌)

그 당시 땅에서 자주 발생하던 사고가 범위를 넓혀 하늘과 바다에서도 연이어 발생하니 정부의 사고대책 관리부서에서는 멘붕(멘탈 붕괴)이 일어날 정도였다. 그 이후 역대 정부에서는 재난대책을 강화하고 국민안전교육 강화 등으로 과거에 비하면 사고가 줄어들어 국민이 다소 편안할 수 있었지만, 정부나 국민이 안전사고 예방에 조금이라도 틈을 보일 때면 여지없이 대형사고가 터져 나왔는데 어떻게 보면 일종의 경고음을 울리는 것과 같다.

인간안전, 자연안전, 정보안전, 지속가능한 안전’은 절대적인 것으로 세계 각국에서 일반화된 가치로 그 바탕 하에서 박근혜정부가 출범 초기에 ‘안전’을 국민행복 단계의 최고의 가치로 인식한 것은 시대정신에도 적합한 올바른 국정방향이기는 했다. 그래서 안행부 장관에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에 두루 섭렵한 유정복 의원을 임명한 것은 그간 역대 정부에서 매진했지만 국민 마음에 불안 요소로 남아 있던 각종 사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정부재난관리 주무부처의 수장(首長)에 오른 유 장관은 장관직에 오르자 “안전에 대한 기본개념부터 시작해서 모든 총체적인 분석을 새롭게 하고, 근원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시스템을 다시 정비하겠다. 조직, 인력, 기능부터 대국민 안전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부분까지 종합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설계를 해 놨다”고까지 하면서, 각 부처 내 안전 관련 분야를 관리․조정하는 ‘컨트롤타워’로서 소임을 하겠노라 의욕을 보였고, 그 후 1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관 한 사람이 정부의 모든 일을 해결해낼 수는 없다. 하지만 과거 내무부 사무관으로 잔뼈가 굵어 조직원들의 기대가 컸고 대통령 신임도 두터운 유 장관에게는 ‘국민안전’ 기반을 단단히 다질 수 있는 기회였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재난관리 매뉴얼과 함께 유사시 범정부적인 수습대책을 얼마든지 잘 대비할 수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는 여당에서 6.4지방선거 차출 말이 있자 새누리당 인천시장 후보로 나서기 위해 장관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안행부 장관은 모든 사고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정부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으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다. 예방이 최선이지만 행여 사고가 났을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일사천리로 인명을 구조하도록 만전을 기하는 자리다. 그런 중책을 맡은 장관이 안전대책은 미완(未完)의 장으로 남겨놓은 채 정권의 안전을 위해 사퇴한 그 순간부터 박근혜정부 출범 후 요란했던 ‘안전’에 대한 시각은 색채를 바랬다. 그 같은 정부의 ‘국민안전’ 꽃 타령 속에서 허술함이 틈새를 벌여 공교롭게도 어처구니없는 대형 참사가 발생됐다. 우왕좌왕하는 정부의 수습대책에 하늘과 땅이 통곡할 일이고, 국민의 마음은 숯덩이가 됐으니 국민 불행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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