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논설위원, 시인)

 
朴 선생! 거울에 비쳐나는 햇빛처럼 화사한 봄이 이국의 땅에서도 눈부시게 펼쳐지고 있습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들려준 인연론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자연이 빚어내는 수려한 형상만큼이나 사람의 인연도 아름답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무수한 세월이 흐른 뒤 그 뒤안길에서 들추어보는 추억담 같은 옛이야기들은 한없는 설렘을 주는 첫사랑의 그림자로 다가오기 십상인데, 낯선 곳을 다니는 여행 또한 그런 신비감을 가져다준다고 하겠습니다.

며칠 전 상하이를 거쳐 쑤저우에 왔습니다. 쑤저우(苏州)는 중국의 도시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평이 나 있는 곳이지요. 이곳에 온 첫날, 박물관에 들렀는데 출구로 나오는 건물 전면에 “쑤저우의 바탕은 ‘인간천당(人间天堂)’의 아름다운 명예, 저명하고 문화의 이름 있는 도시다”로 해석되는 글이 붙어있었지요. 지금까지 자주 들어본 ‘위에는 천당이 있고 아래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抗)’는 말뜻과 같으나 느낌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한 인간천당 쑤저우가 물의 도시, 정원의 도시, 관광의 도시로 불리는 바대로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한 곳입니다. 또한 춘추시기 오나라 문화의 발상지로서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서울 크기의 14배나 되고 호적 인구 825만 명에 유입인구를 더해 1천만 명이 넘는 거대도시임에도 변두리지역까지 중국 제일의 관광도시에 걸맞게 가로수나 도로 옆 화단 등 도시전체의 구석구석이 잘 가꾸어져 있어 나그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습니다.

이 도시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이름난 명승지를 천천히 둘러보았습니다. 자유여행을 하는 사람이 택시를 타거나 자동차 대여도 어렵고 해서 1원(한화 185원 정도)만 내면 탈 수 있는 시내버스를 이용했지요. 교통지도만 봐도 어지간 곳에는 쉽게 찾아갈 수 있게끔 버스노선표시가 잘 돼 있어 베이쓰타(北寺塔), 주어정웬(拙政园), 스즈링(狮子林), 후치우꿍웬(虎丘公园), 류웬(留园) 등 이름난 명승지를 쉽게 둘러보았는데, 곳곳마다 아름다운 물결로 넘쳤습니다.

먼저 쑤저우 정원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중국의 4대 정원 중 주어정웬과 류웬의 두 정원이 이 도시에 있어 세계 각지에서 여행자들이 명품 정원을 관람하러 몰려오는데, 봄철인 요즘은 중국 내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답니다. 봄빛이 무르익는 정원의 이리저리 길을 따라 걸으면 꽃나무며 숲이며, 고색이 찬란한 정자에다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갖가지 모양의 돌들, 아름다운 장관들을 조용히 비추는 호수를 바라보노라면 저절로 탄성이 나온답니다.

쑤저우는 탑의 도시입니다. 오래전부터 이곳에서는 “치타 빠좡이 있다”는 말이 있었는데, ‘치타’는 일곱 개 탑이고 ‘빠좡’은 여덟 개의 절을 가리키지요. 그 당시 절은 사라져 찾아볼 수 없지만 베이스 탑 등 일곱 개의 탑은 그대로 남아있지요. 그 가운데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후치우 탑(虎丘塔)이 유달리 기억에 남습니다. 춘추시기 오왕 합려가 묻혀 있는 7층탑의 기울기가 조금 기울어져 있어 ‘동양 피사의 사탑’으로도 불리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탑이랍니다.

또한 ‘수향(水鄕)이라 불리는 퉁리(同里)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쑤저우에서 시외버스로 40분 거리에 있는 퉁리는 중국의 강남 수향 중에서도 으뜸으로 ‘동양의 베니스’라 불릴 만큼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곳이랍니다. 열다섯 갈래의 강물에 의해 7개의 섬으로 나누어져있고 40개나 되는 작은 다리로 연결된 이곳은 천여 년의 세월을 지켜온 옛 마을이지만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답니다. 나룻배를 타고 동네 수로를 한 바퀴 돌아본 재미가 쏠쏠했지요.

아름다운 도시, 쑤저우의 마지막 날은 영암산 꾸쑤타이에 올랐습니다. 숲속을 헤쳐 올라보니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고소대(姑蘇臺)’란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지요. 한때 오나라의 왕 부차가 월나라 출신 미녀 서시(西施)와 향락했던 풍요의 상징이었지만, 월왕 구천에게 패한 굴욕의 장소이기도 하지요. 누각 위에서는 이름 모를 산새가 앉아 구슬피 울고 있었는데, 인간사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유적이 된 채로 지금은 관광 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답니다.

朴 선생! 여행은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꽃구름을 일게 하지요. 특히 외국의 낯선 지방을 다니다보면 생소한 풍경과 불통의 언어가 주는 부담감, 그 불안감에 두렵게까지 느껴지게 마련이지만 그에 동반해 첫사랑 같은 가슴 설렘과 기대가 부풀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지요. 그래서 일상사에서 우리가 갖게 되는 여행이 삶에 있어 새로운 멋과 맛을 보태게 하는 활력소인가 봅니다. 4월 둘째 주에 돌아가면 봄 천지, ‘인간천당’을 구경한 죄로 동동주 한잔 사겠습니다. 그때 안주 삼아 여행이야기를 마저 하기로 하고, 우선 쑤저우의 화사한 봄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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