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병권 논설위원

 
# 안철수 의원이 4일 기자회견을 했다. 국정원 수사와 관련해 팽팽한 여야대치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회견 내용을 들여다보면 꼬일 대로 꼬인 정국을 풀어야 한다는 충정이 담겨 있는 것 같다. 나름대로 숙고하고 숙고한 끝에 내놓은 솔루션이다. 야당이 이미 주창해온 것이긴 하지만 특검을 통한 해결 필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개인의 정치적 존재가치를 부각시키기 위한 의도가 엿보이긴 해도 일응 일리 있는 얘기다. 그러나 과연 특검만이 해결책일까. 또한 잠재적 대권주자인 그의 향후 행보에 이 같은 처방이 어떤 영향을 줄지 궁금하다.  

‘안철수식 정치’는 느린 걸음이다. 참 진지하고 신중하다. 그러나 너무 장고(長考)한 끝에 한 수를 두는 바람에 다소 타이밍을 놓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나 성명서도 시의적절해야 한다. 선 굵은 결단력과 기민한 순발력이 함께 필요한 게 정치인데, 따끈따끈한 맛이 떨어져서야. 무슨 박사학위 시험 공부하듯 골방에 틀어박혀 한참 씨름하며 연구하다 뒤늦게 내놓다시피 하면 무엇 하느냐는 의견이 없지 않다. ‘정치는 살아 꿈틀거리는 생물(生物)’이라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도 참고할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회견에 여러 번 사용된 ‘특검’이라는 말부터 어째 좀 찜찜하다. 무슨 ‘껌’이름 같은 줄임말 대신 ‘특별검사제’라는 본래 워딩 그대로 쓰는 게 좋지 않았을까. 명색이 국회의원이고 대권주자라면 말이다. 듣기에도 낫고 비교적 속되지 않는 듯한 그의 이미지에도 어울린다. 이것은 본질이 아닌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비주얼시대, 감성 정치시대. ‘사소한’ 주의부족이 의외로 큰 손해를 안겨 줄 수도 있다. 주변 스텝들이 아마추어틱한 느낌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이런 허점이 노출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특검이 필요하다고 하자. 당장은 그렇다손 치자. 그러나 미래를 위해서는 ‘특’자가 들어가는 것보다는 그냥 통상의 검찰 조직 전체가 제대로 시스템을 갖춰 잘 굴러가는 게 더 좋다. 모든 사건, 모든 수사에 일일이 다 ‘특’자를 붙일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지난해 대선과정이 다시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안 후보는 준비가 완벽하지 못했다. 적어도 지난해 18대 대선만큼은. 정치개혁안부터 그랬다. 시간에 쫓겨 급조한 듯한, 설익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출마를 다음으로 미루거나, 그리고 일단 출마했다면 끝까지 ‘고우(Go)’ 했어야 했다. 정치개혁을 위해 한 몸 불사르겠다는 각오로 계속 밀고 나갔어야 했다. 나아가 야권단일화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를 하더라도 좀 더 흔쾌히, 그리고 남자답게 굳은 악수를 나누며 화끈하게 밀어줬어야 했다. 필자의 사견이지만 사퇴 기자회견에서는 웬만하면 눈물만큼은 보이지 말았어야 했다. 미국행도 대선 결과를 보고 나서 택하는 게 나았을 것 같다. ‘새 정치’란 단어에 잔뜩 기대감을 갖고 풍선처럼 가슴이 부풀어 오른 지지자들을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식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왠지 ‘눈치꾼’으로 비쳐지는 측면을 탈바꿈해야 그의 정치행위에도 차기에 대한 무게가 쏠릴 수 있지 않을까. 

# 무슨 뾰족한 방법은 없을까. 검찰 중립과 독립성 확보 방안 말이다. 개혁이 필요하다. 지금은 딴 소리를 하고 있지만 여권에서도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개혁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의원들이 많다. 검찰청법 개정안만 해도 이미 13년 전인 2000년에 제출됐었다. 개정안엔 당시 한나라당 안상수 김기춘 서청원 의원 등이 뜻을 함께하며 서명을 한 바 있다.

시대착오적인 상명하복 규정, 민심과 동떨어진 검사동일체 원칙은 재고돼야 한다. 구체적인 사건에 관해 검찰총장에 대해 법무장관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끼어들기’는 시정돼야 한다. 현재대로라면 두 사람 간에 이견(異見)이 발생하면 검찰총장이 사퇴할 수밖에. 1988년 임기제 도입 이후 채동욱 검찰총장까지 검찰총장 12명이 중도 사퇴했다.

법무장관보다 검찰총장이 기수가 낮아 문제라거나 검찰총장 임기를 마친 후 장관 등 다른 공직에 진출하는 것을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이보다는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처럼 선출직 위원으로 구성된 ‘사법최고회의’에서 검사를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적극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1894년 갑오개혁과 일제시대 이후 판사는 내내 선거 제도를 피해왔다. 단 한차례의 페이퍼 테스팅만 통과하면 평생이 보장되는 임명장을 받아든다. 사법부 독립이라는 ‘방패막’ 덕이다. 장점도 있겠지만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판사들이 세상을 재단하는 폐단이 있다는 지적도 많다. 법조 개혁 방안은 간단치 않은 일이지만 차근차근 방안을 찾아봐야 한다. ‘특검’만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도, 능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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