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문제의 동생 회남왕이 역모에 연루되어 촉으로 귀양을 가다가 도중에서 병들어 죽었다. 그 소식을 들은 황제는 통곡을 하며 후회했다. 원앙은 문제에게 세 가지 훌륭한 일이 있으니 슬픔을 거두라고 위로하자 황제가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세 가지 일이라니, 그것이 무엇이오?”

“우선 첫째로, 폐하의 효도입니다. 전에 대나라에서 모후이신 박 태후께서 3년 동안 병석에 누워 계셨을 때 폐하께서는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신 채 간호하시고 약은 반드시 손수 맛보신 뒤가 아니면 드리지 않으셨습니다. 저 증삼(공자의 제자)조차도 그리하지 못했을 것이옵니다. 더욱이 왕이라는 존위에 계셨으니 증삼의 효도를 훨씬 능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여씨 일족의 횡포에 이어 대신들이 나랏일을 마음대로 휘두를 때 폐하는 대나라에서 고작 여섯 대의 마차로 장안까지 달려오셨습니다. 당시의 장안이란 곳은 무슨 음모가 숨어 있는지 알지 못하는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그런 곳에 달려오신 폐하의 용기는 저 맹분, 하옥(중국 전설적 영웅)이라도 미치지 못하는 것이옵니다. 세 번째, 폐하께서는 장안의 집으로 들어가신 뒤에도 천자의 지위를 거듭 사양하셨습니다. 폐하의 다섯 번의 사양은 허유(요 임금이 천하를 양도했으나 사양한 성인)보다도 네 차례나 더 됩니다. 저는 이상의 세 가지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의 조치는 그 근원이 회남왕에게 괴로움을 줌으로써 잘못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는데 여왕이 병사한 것은 오로지 호위 관리들의 잘못이었습니다.”

원앙의 말을 듣고 문제는 기분이 약간 풀리는 듯했다. 문제는 원앙에게 다시 물었다.

“뒷수습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회남왕에게는 아들이 셋 있습니다. 아무쪼록 폐하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 말을 들은 문제는 회남왕 세 아들들에게 각각 왕위를 주었다. 그 뒤부터 조정에서 원앙의 이름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문제가 황후와 신 부인을 데리고 상림원(장안 교외)에 거둥했을 때의 일이다. 그 때까지 신 부인의 지위는 황후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 그리하여 상림원의 경비관도 그것을 바탕삼아 두 사람의 자리를 나란히 마련해 두었다. 그런데 막상 참석한 단계에 이르자 원앙이 신 부인의 자리를 뒤로 물려 놓았다. 그 자리를 본 신 부인은 화를 내며 참석하지 않았다. 황제마저도 화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궁중으로 돌아가 버렸다. 원앙은 그 뒤를 좇아 궁중으로 돌아가서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존비의 구별을 명확히 함으로써 상하의 관계가 원만해지는 법입니다. 폐하께서 황후를 맞이한 이상 신 부인은 후궁입니다. 후궁을 정실과 같은 자리에 앉게 해서는 존비의 구별을 지을 수가 없습니다. 폐하께서 그처럼 신 부인을 총애하신다면 금품을 내리시든가 그밖에 얼마든지 마음을 나타내실 방법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문제는 깨달은 바가 있어 좋은 말이라고 기뻐하며 즉시 신 부인을 불러서 원앙의 뜻을 전해주었다. 신 부인도 원앙에게 감사하여 금 50근을 주었다.

그러나 원앙은 번번이 바른 말만 했기 때문에 차츰 문제에게서 멀어져 마침내 농서의 도위로 좌천되었다. 농서로 부임한 원앙은 부하들을 아꼈기 때문에 부하들 모두는 그를 위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칠 정도로 따랐다. 원앙은 그 뒤 제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오나라 재상으로 다시 임명되어 임지로 출발할 때 조카 원종이 말했다.

“오왕은 평소부터 자만심이 강하다는 평판이 자자한 자이며 주위에는 간신들이 우글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을 꾸짖어 바른길로 잡으실 생각은 아예 마십시오. 그런 일을 하시는 날에는 그들에게 당하시든가 이검(날카롭고 썩 잘 드는 칼)을 맞으실 게 뻔합니다. 남쪽은 하루 종일 술이나 마시기에 좋은 날입니다. 이따금 오왕에게 모반을 일으킬 생각은 마시라고 일러 놓기만 하면 족하겠지요. 그 외의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원앙은 그 충고대로 행함으로써 오나라 왕에게 정중한 대우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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