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지난 26일 서울 합정동 한국기독교100주년선교기념관에서 양화진선교사추모예배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셔우드 홀 선교사의 외손자 클리포드 킹 씨와 웰본 선교사의 손녀 프리실라 웰본 에비와 그의 남편 고든 에비가 참석했다.

이들은 양화진 기록관에 셔우드 홀과 웰본 선교사의 유품을 기증했다. 기증된 유품은 셔우드 홀 선교사의 진료가방과 청진기, 웰본 선교사의 선교수첩과 나막신, 도장 등이다. 선교사 후손들은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담임 이재철 목사)의 초청으로 이번 추모예배를 위해 방한했다.

셔우드 홀(1893~1991) 선교사는 서울에서 태어난 미국인 의료선교사이다. 조선 시대에 폐결핵 전문 의료선교사로 결핵요양소를 세웠으며 ‘결핵환자의 위생학교’라고 이름을 붙였다. 요양소의 운영비 마련과 결핵에 대한 계몽과 선전을 위해 1932년 12월 3일 한국 최초로 남대문을 그린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했다.

대한결핵협회는 탄생 100주년인 1993년 공적비를 세웠다. 1940년 미국 스파이 혐의로 일본헌병대에 체포됐으며 벌금 5000엔을 물고 인도로 옮겨 의료선교를 했다. 이후 캐나다의 벤쿠버에서 사망했으며, 유해는 1992년 4월 10일 아버지가 묻힌 양화진 외인 묘지에 묻혔다.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 제임스 홀(1860~1894)과 어머니인 로제타 홀(1865~1951)도 한국에 들어와 의료선교에 몸을 던졌다. 윌리엄 홀이 평양에서 청일전쟁 부상자를 치료하던 중 전염병에 걸려 34살의 나이로 사망하자 로제타 홀은 일시 귀국했지만, 1897년 다시 한국을 찾아와 평양에 기홀병원과 광혜여원을 세웠다.

한국 최초로 점자법을 개발해 맹인교육에서도 힘썼다. 1917년부터는 동대문병원에서 근무하며 고려대 의대의 전신인 여자의학원(경성의학교)을 설립했다.

웰본 선교사는 1928년 과로로 인한 장티푸스로 사망했다. 양화진에는 웰본의 6남매 가운데 태어난 지 열흘만에 숨진 아들 하비, 세 살 때 사망한 앨리스도 안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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