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 문화칼럼니스트

 
좋은 우리말 놓아두고서 이해하기 힘든 외국어를 쓰는 일이 지나치다. 민간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기관이나 공공 기관들도 영문으로 표기돼 대다수 국민들이 그 정체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스포츠 뉴스를 보다 보면 “저 팀이 과연 뭐하는 기업의 팀이냐?” 싶은 곳들이 자주 튀어나온다. KT&G도 그중 하나다. 한국담배인삼공사라고 하면 다 알 터인데, 영어로 그렇게 써 놓으니 그 정체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철도공사라고 하면 바로 기차 생각이 날 것인데도 KORAIL라고 하니 그게 기차인지 비행기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수자원공사라고 하면 그곳이 수돗물하고 관련이 있다고 바로 알아차리겠지만, K water라고 하니 그 정체 역시 알쏭달쏭 할 뿐이다.

신토불이 어쩌고 하면서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고 떠들어대는 농협은 그 좋은 우리 말 두고 NH라고 쓰니, 앞뒤가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는다. 농촌진흥청에서 ‘농촌어메니티정보시스템’이라는 걸 내놓았는데, 이게 뭐하는 건지 아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과연 누가 손을 번쩍 들겠는가.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도시개발공사라고 하면 좋을 것을, LH, SH라고 하니 보는 사람들은 그저 난감할 뿐이다.

서울시에서 창업을 희망하는 서울시 여성들을 위해 창업에 필요한 지식을 교육하고 창업을 돕는 사업을 한다며 내놓은 게 ‘맘프러너’다. 엄마(Mom)와 기업(Enterpreneur)를 섞어 만든 말이라고 하는데, 혜택을 보아야 할 서울시 여성들 대부분이 “이게 도대체 무엇인고?” 하는 바람에 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도 못했다고 한다.

공공기관에서 사업을 한다며 내놓은 이름들도 도무지 영문 모를 것들이 수두룩하다. Justice 1st, Home tax, Think Fair, Blue Guard 122, NEIS, Work Together, E-World, Youth Work Net, KACIS, Safe-Korea, 숲에 ON. 이름을 지은 사람들은 “굿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들었을지 몰라도, 정작 그것을 이해하고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어리둥절 할 뿐이다.

글로벌 시대다 뭐다 해서 영어로 이름을 짓는 게 시대 흐름에 맞다고 우길지 모르겠으나 왠지 억지스럽고 촌스럽다. 갓 쓰고 자전거 타는 느낌이다. 물론 외국인들이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영어로도 표기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건 외국인들을 상대하거나 해외서 사업을 할 때 필연적으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일 때 일이고, 국내서 대한민국 국민을 상대하면서 왜 정체를 알 수 없는 외국어 표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광화문 광장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황금빛으로 찬란하게 앉아 계시는 세종대왕 동상도 왠지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세종대왕이 오늘날 후손들이 하는 짓을 보면 혀를 끌끌 찰 게 분명하다.

언어를 사용하는 데도 사대주의 관습이 남아 있는 게 분명하다. 알몸이라고 하면 경박하다 하고, 나체라 하면 약간 고상하고, 누드라고 하면 교양이 있는 듯 행세하는 것이다. 영어가 일등, 한자가 2등, 순 우리말은 값을 쳐주지 않는 고약한 버릇이 남아 있다. 와이프나 처라고 하면 괜찮고, 마누라라고 하면 교양이 덜 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국제화 시대라고 해서 영문 모를 외국어를 마구 써대는 게 능사는 아니다. 순우리말이랍시고 써대는 북한의 방송 언어도 때로는 혐오스럽고 거북하지만, 덮어놓고 영어를 갖다 붙이는 우리들도 반성해야 된다. 세종대왕이 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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